[곽인찬칼럼]

특허 패러독스/곽인찬 논설위원



“요정 지니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에 사업가는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지니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당신이 무엇을 바라든 당신의 이웃은 두 배를 받게 될 거예요.’ 사업가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한쪽 눈을 멀게 해주세요.’”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마이클 헬러 교수가 쓴 ‘그리드락 경제(Gridlock Economy)’에 나오는 얘기다. 설마라고? 현실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은 경쟁사의 두 눈을 멀게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한쪽 눈이 머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는 1906년 관련 특허를 냈다. 그 뒤 글렌 커티스란 사람이 라이트 형제의 설계를 더욱 발전시켰으나 특허를 놓고 싸움이 붙었다. 미국 법원은 당시 최대 항공기 업체인 커티스 컴퍼니에 비행기 생산 중단 명령을 내렸다. 꼬일 대로 꼬인 갈등을 푼 것은 다름아닌 1차 세계대전이었다. 미 의회는 참전을 앞두고 강제로 비행기 특허풀을 만들었다. 국익을 위해 개인 특허를 희생시킨 셈이다. 서로를 옭아매던 특허가 풀리자 곧 전투기 대량 생산이 시작됐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항공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비행기 건은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특허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 헬러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을 ‘그리드락’이라고 부른다. 뒤엉킨 교차로에서 차가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다. 주인 없는 ‘공유재의 비극’이 남용을 낳는다면 소유권이 뿔뿔이 흩어진 ‘반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the Anticommons)’은 미활용을 부른다. 극단적으로 어떤 특허는 오로지 경쟁사의 신제품 개발을 방해하는 데만 쓰인다. 혁신을 자극하던 특허가 장애물로 변질된 꼴이다. 특허 남발과 소유권의 파편화는 몇 군데 알박이 때문에 멀쩡한 땅을 놀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드락은 신약·생명공학 분야에서 도드라진다. 지난 30년 동안 등록된 DNA 관련 특허만 4만개가 넘는다. 게다가 자잘한 특허들을 그러모아 소송으로 돈을 버는 ‘특허 괴물’도 성업 중이다. 아무리 작은 특허도 동의를 받지 못하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무시할 수 없다. 그 결과 제약사들은 본연의 연구개발(R&D)보다 소송에 더 힘을 쏟는다. 지긋지긋한 소송이 두려워 아예 개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숱하다.

헬러 교수에 따르면 그리드락이 초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 비용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200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판매를 허용한 신생물질은 17개에 그쳤다. 그보다 6년 전 56개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숫자다. 미 제약사들의 R&D 비용이 그동안 두 배로 늘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지금 인류의 보편적인 건강추구권은 그리드락 그물에 갇힌 꼴이다.

정부는 지난주 대구 신서혁신도시와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를 첨단의료단지로 복수 선정했다. 앞으로 30년 동안 5조60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신서와 오송을 신약 개발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가슴 벅찬 비전도 제시됐다. 다 좋은데 한 가지가 빠졌다. 특허 관련 소송 대책이 없다. 일단 개발해 놓고 어떻게 되겠지 하다간 돈과 에너지만 낭비하기 십상이다. 연구진도 중요하지만 특허 지뢰를 제거할 변호사와 변리사도 중요하다. 이미 정보산업(IT) 분야의 우리 기업들은 툭하면 소송 전쟁을 치른다. 신약은 그보다 더 거친 특허 덤불을 각오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그리드락은 특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중, 삼중 규제 역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그리드락이다. 다 좋은데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 다 좋은데 내 임기 중에는 안 된다는 님투(NIMTOO·Not In My Term Of Office), 같이 죽자며 공장을 점거한 노조의 농성 투쟁 등도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그리드락의 또 다른 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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