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약값 인하 정책 문제없나/ 김승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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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제약업계는 어수선하다. 정부가 ‘보험약가(약값) 인하’ 카드를 빼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약회사들은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등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미뤄놓은 채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벌써부터 예산절감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만은 손대면 안된다는 목소리는 살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 정부는 왜 보험약가를 인하하려고 하나. 그 이유는 만성적인 건강보험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부의 보험약가 인하 정책은 옳다. 아니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의 3대 축인 ‘약가’ ‘의료수가’ ‘조제수가’ 중 약가에만 메스를 가하는데 있다. 정부가 의료수가와 조제수가에 대한 ‘인하 명분’을 찾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들(의사와 약사)의 ‘강력한 힘’ 때문인지 몰라도 ‘의료와 조제수가’도 이번 기회에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약값 인하밖에 없다는 외침만 들릴 뿐이다. 친 기업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 정부도 의약품(약)을 건강보험 체계를 지탱하는 하부구조 정도로만 인식해 오던 예전의 기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 현재 보건복지가족부가 검토하고 있는 ‘약값제도 개선과 유통체계 선진화 방안’은 제네릭(복제약) 가격을 대폭 낮춰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값도 제네릭과 동일하게 내릴 계획이다. 여기에 의료기관이 제약회사로부터 약을 싸게 구매할 경우 일정액을 인센티브로 주고(저가 구매 인센티브), 싸게 팔린 약값을 조사해 이를 기준으로 약값을 떨어뜨리는(평균 실거래가)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알아서 약값을 깎도록 조장하고 정부는 깎인 약값만큼 보험약가를 계속해 내릴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대로라면 건강보험재정만큼은 튼튼해 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계 상황까지 약값을 계속 깎아야 하는 제약회사들의 경쟁력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제약회사에 있어 최선의 생존전략은 싼 원료를 찾아 의약품 생산 원가를 낮추는 것뿐이다. 당연히 연구개발(R&D)은 뒷전으로 사라진다. 차세대 성장동력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된다. 의약품의 산업적 중요성은 내팽개쳐졌다.

#. 지난 2003년 4월 우리나라는 세계 10번째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국가가 됐다. ‘신약개발 신화’의 꿈을 실현시킬 항생제 ‘팩티브(factive)’의 탄생 덕분이다. 이 때만해도 신약 대국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열린 듯했다. 그러나 팩티브는 막대한 투자 비용에 비해 매출액은 초라했다. 제약회사들은 투자에 비해 회수가 불투명한 신약 개발보다는 쉽게 이익이 나는 제네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정부도 제약회사의 시장논리를 인정, 제네릭의 시장 지배력를 높여줬다. 미래를 위한 R&D보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형국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셈이다. 이로 인해 신약개발은 뒷전으로 밀리는 신세가 됐다.

그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인한 위기감 고조와 함께 동아제약 자이데나, 부광약품 레보비르, 유한양행 레바넥스 등 일부 신약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의 제약업계는 신약 개발이란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신약대국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약대국은 헛된 꿈이 아니다” 등의 구호가 말해주듯이 신약개발에 대한 자신감도 넘쳐났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정부가 ‘약값 인하’라는 명분을 내세워 신약 개발에 찬물을 끼얹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약값을 내려야 한다면 의료보험재정의 3대 축에 대한 점검과 분석·소통·합의 등의 과정을 거쳐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만이 진정성이 담긴 약값 인하 방안을 만들 수 있는 길이다.

/sejki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