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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부호의 4대 기원설/최필수 베이징 특파원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05 17:52

수정 2009.11.05 17:52

각종 순위 집계 회사인 후룬은 지난 10월 2009년 중국 부호 순위를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그들을 묘사했다. “평균 연령 50세의 남성. 맨손으로 창업. 저장성 출생. 16년 전부터 부동산에 손을 댐. 서구의 부호들보다 약 15세 젊음.”

예일대 사회학 교수인 이반 젤러니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겪은 국가들의 부호 명단을 분석하며 중국만의 특징을 딱 꼬집어 제시했다. 민영 기업가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부호 명단에서 옛 소련 정부관원 출신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들이 경제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채로 하루아침에 시장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권위 타파와 자유주의 시장경제 개혁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진행된 헝가리의 경우 부호 명단에서 옛 국유기업 관원들이 대거 나타난다.

급속한 개혁 과정에서 이른바 내부자 기업 매수 현상이 나타난 까닭이다. 이들과 달리 중국은 1978년 이래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너는 식으로 점진적인 개혁을 진행한 결과 상업적 열망과 수단을 갖춘 민영기업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었다.

러시아, 헝가리, 중국은 각각 이행경제의 세 가지 모형을 대표한다. 정경유착의 러시아. 급진적 시장개혁의 헝가리. 점진적인 개혁의 중국. 아이러니한 것은 공산당정권이 붕괴됐던 러시아와 헝가리에서보다 공산당이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서 민영기업인이 더 많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더 강한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중국 민영기업가의 치부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베스트셀러가 된 수필 ‘야만생장’은 중국의 부호 형성

역사를 크게 3단계로 개괄한다. 1978년부터 1993년 회사법 제정 전까지의 ‘전(前) 회사시대’. 1993년부터 2001년까지의

‘회사시대’. 그리고 2001년부터 현재까지의 ‘창부(創富)시대’.

전 회사시대에는 거티후라고 불리는 자영업자들과 틈새교역 시장을 장악한 당 간부들이 부를 축적했다. 거티후는 거의 삶의 막장에서 생존을 추구한 집단이고 당 간부들은 정보와 인맥을 장악한 특권층이란 것을 생각하면 정반대의 계층이 개혁개방 초기에 치부의 기회를 잡았던 셈이다. 이들은 아직 제대로 된 회사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근본적으로 회사 설립에 대한 법률적 가이드 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시대부터는 주로 수출 수요에 부응한 각종 제조업체들이 회사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부를 축적했다. 광둥성의 수출가공업체와 저장성 일대에 분포한 향진기업들이 이 시대를 대표한다. 이들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완샹처럼 정상급 제조업체로 업그레이드되거나 주장 삼각주나 원저우처럼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해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1년 이후 창부시대에는 창업과 상장을 통한 폭발적인 부의 축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부호들은 매우 젊으며 해외 유학 경험과 인터넷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후룬 부호 명단의 상위권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거티후, 당간부, 향진기업, 그리고 21세기의 창업가들. 이들을 아울러 중국 부호의 4대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들이 출신과 나이를 불문하고 한데 어우러져 비국유 부문이라는 중국경제의 거대한 파이를 생산하고 있다.

한편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국유 부문에서는 개인이 대규모로 부를 축적하는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중국 기업들은 대부분 페트로차이나와 같은 국유기업과 공상은행과 같은 국유은행들이지만 이들의 경영자들은 월급쟁이일 뿐이다.

탈국유화에 성공한 하이얼이나 롄샹 같은 우량 기업들도 스타급 경영진은 보유하고 있지만 순수 민영기업에서 나타나는 절대권력의 주주는 찾기 힘들다.

중국 최대 부동산 회사 완커의 최고경영자(CEO) 왕스처럼 주식회사로의 전환 과정에서 아예 자기 지분을 깨끗하게 털어버린 인물마저 있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이지만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기업 랭킹과 부호 랭킹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셈이다.

/cp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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