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외고 폐지’만이 능사인가/이두영 사회부장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05 18:08

수정 2009.11.05 18:08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교육전문가다.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교육문제에 관한한 한 마디쯤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소비의 특징’에서 잘 드러난다.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5.4%에서 올해 상반기 7.4%로 2.0%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이 비중이 7.3%로 미국(2.6%), 일본(2.2%), 영국(1.4%), 프랑스(0.8%), 독일(0.8%) 등 주요 선진국을 훨씬 앞질렀다. 고등교육기관 입학률 역시 지난 2007년 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6%)을 웃돌았다.
독일은 34%, 일본 46%, 영국 55% 등이었다. 가히 ‘교육 공화국’이라고 할 만 하지 않은가.

■때 아닌 마녀 사냥 논란

외국어고를 둘러싸고 마냥사냥 논란이 빚어졌다. 급기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 등 특수 목적고를 특성화고로 통합하고 지원 자격 제한 없이 ‘추첨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자면서 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외고가 외국어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데다 과열경쟁과 사교육 조장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앞서 외고 입시를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라는 주장에 대해 “마녀사냥이란 마녀가 아닌 사람을 마녀로 몬다는 얘기지만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고 맞받아쳐 논란을 확대시켰다.

지난해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 등 3개 영역의 평균점수를 합산한 결과 상위 30개 고교 중 외고 21곳, 2009년 서울·경기지역 외고의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진학률 41.1%, 외고 출신 사법시험 합격률 증가, 외고의 잘못된 운영이 사교육 증가의 한 원인이라는 응답 70.6%(여의도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등이 외고 맹공의 유력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요컨대 이런 자료들이 소위 부의 대물림, 사회통합 저해, 과열 사교육 조장 등 외고의 폐단을 입증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외고가 입시 명문학교로 변질됐다는 주장에 대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은 필수”(강성화 외고연합회장), 폐지여론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여론의 90% 이상이 국회의원을 없애버리자고 나오지만 그래도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는 있는 것”(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등의 반론도 만만찮다.

■글로벌 인재 양성, 자율과 경쟁 속에서

외고는 과거 평준화제도의 부작용으로 지적된 하향 평준화의 보완 및 수월성(엘리트) 교육을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괄목할 만한 국내외 대학 진학률·학업 성취도, 외국의 극찬, 사회 각계 리더 양성 등 큰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더 많은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이런 순기능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외고 폐지론의 근거가 된다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 하다.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 위주의 외고 입시가 사교육 조장의 핵심이라는 주장 역시 논리적으로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이 자녀를 외고에 보낼 생각이 있는 서울·경기지역 학부모 701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48.9%가 외고가 폐지돼도 자녀에게 지출되는 사교육비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은 32.1%에 그쳤다.

자녀를 이른바 일류 대학에 보내고 싶은 부모들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공교육이 이런 학부모·학생의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한 외고 폐지와 같은 처방만으로는 사교육 잡기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이기수 고려대 총장(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장)은 최근 협의회 세미나 뒤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가 경쟁과 효율 개념으로 출발했는데 후퇴하는 양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이자 글로벌 리더 양성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육체제 개편이 졸속적으로 이뤄져서도 안되지만 내용 역시 경쟁력 강화에 초점에 맞춰져야 한다.
다음달 예정된 정부당국의 개편안이 주목된다.

/do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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