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거품은 무섭다/곽인찬 논설실장

버블의 힘은 무섭다. 90년대 초반 대우전자는 공기방울 세탁기를 만들어 히트를 했다. 공기방울이 빨래를 두들겨 빠는 첨단 기술이었다. 훅 불면 금세 꺼질 것 같은 공기방울이 묵은 때를 싹 벗겨낸다는 게 놀랍다. 군은 천안함 침몰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버블제트'를 꼽고 있다. 버블제트는 어뢰가 수중 폭발할 때 생기는 충격파를 말한다. 일종의 공기방울 물대포인 셈인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1200t급 초계함이 단번에 뒤틀려 두 동강이 났다.

버블은 경제도 한방에 결딴낼 수 있다. 바로 이번에 미국이 된통 당했다. 일본은 여전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미 연방중앙은행(FRB)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저금리 기조 탓에 주가·집값이 뛰자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경고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행동하는 중앙은행장이 아니었다. 그가 우물쭈물하다 물러나자 끝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버블이 터졌다. 일제 버블과 달리 미제 버블은 강한 전염력으로 글로벌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렸다.

그러자 폴 크루그먼 같은 케인스주의자들은 버블 붕괴를 버블로 치유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재정을 풀고 금리를 내려 시장에 돈을 쏟아붓는 국제 공조가 이뤄졌다. "인위적 부양은 시장에 다시 비누칠을 해 거품을 키우는 격"이라는 깐깐한 원칙주의자들의 비판은 소수의견으로 묻혔다. 돈 쓰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치인들은 부양책을 반겼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저금리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은 뜻밖이다. 윤 장관은 "저금리로 인한 과잉 유동성 때문에 금융위기가 터졌는데 다시 저금리로 사태를 수습하고 있어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잉 유동성을 그냥 두면 자산시장을 흔들어 버블 상황에 이를 것이 뻔하다"는 말도 했다. 지난주 워싱턴 G20 재무장관 회담을 마친 뒤 한 얘기다. 바깥 바람을 쐬면 시나브로 마음이 풀어지는 걸까,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종종 외국 출장 길에 속내를 드러낸다. 윤 장관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나깨나 성장을 강조해야 할 재무장관의 본분을 잠시 잊었다.

아니면 회의장 분위기가 윤 장관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금리인상=시기상조'라는 등식에 집착해 있는 동안 공동성명엔 "경기 회복 속도에 따라 나라별로 서로 다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일부 국가는 벌써 출구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문장도 삽입됐다. 의장을 맡았던 윤 장관의 눈엔 전후좌우 돌아가는 사정이 빤히 보였을 것이다.

사실 버블 경고는 물가의 최후 보루인 중앙은행장의 몫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총재가 입을 다무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발언이 나온다. 얼마 전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금리인상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냈다. 기업이 금리인상을 옹호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윤 장관이 재무장관답지 않은 발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거품의 힘은 무섭다. 이번 위기 때 온 세상이 그 위력 앞에 떨었다. 거품은 꺼지기 전에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버블 조짐은 곳곳에 보인다. 갈 곳 잃은 돈이 은행으로 몰리는 바람에 정기예금 금리가 2%대로 내려앉았다. 넘치는 유동성이 앞으로 우리 경제에 무슨 짓을 할지 두렵다. 올 1·4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비 7.8% 뛰었다. 기준금리(2%)보다 네 배 높은 수준이다. 돈을 흡수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할 텐데 한은 김중수 총재는 당분간 금리에 손 댈 뜻이 없어 보인다. 그는 민간 자생력 회복을 금리인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유연한 대응을 스스로 제한한 꼴이다.

그린스펀은 연착륙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는 교훈을 후세에 남겼다. 성장은 작은 이익(小貪), 버블은 큰 손실(大失)이다. 한은 총재는 단순히 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는 7인 위원 중 1인이 아니다. 그 무게감은 다른 6인을 합한 것보다 무겁다. 버블 소멸 작전의 선봉에는 재무장관이나 전경련 산하 연구소가 아니라 중앙은행 총재가 서야 한다.
"6월 지방선거 때문에 금리인상을 미루고 있다"는 세간의 수군거림은 비극이다. 너나 없이 버블을 걱정하는 데 정작 한은과 김 총재만 태평양 한 가운데 갈라파고스 섬이라도 된 느낌이다.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