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현장르포] ‘중고명품’값 구입연도보다 보관상태로 흥정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6.08 18:22

수정 2010.06.08 18:22

▲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길 초입에는 23㎡ 규모의 작은 중고명품 가게가 몰려 있다. 이곳에서는 유행이 다했거나 매년 출시되는 인기 명품백과 시계를 정가의 50∼60%에 구입할 수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기자가 9일 찾아간 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중고명품 판매업체는 욕망의 유통기한을 넘긴 명품들이 새 삶을 얻는 곳이다. 업계 최대 규모(661㎡)를 자랑하는 이곳 1층에는 한때 여심을 흔들었던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의 인기 핸드백과 유행 맞춰 폼 좀 쟀을 선글라스, 녹슬지 않은 도도함을 자랑하는 손목 시계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곳은 자칭, 타칭 ‘중고명품계의 백화점’이다. 누구라도 이곳을 방문하면 ‘되팔림을 당한’ 명품들의 기세에 압도당한다.

여기만이 아니다. 몇 블록을 지나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가면 50㎡ 이하의 중고명품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구입시기보다 보관 상태가 가격 결정

“잘 보셨네요. 이 제품은 들어오면 바로 나갑니다.”

전면에 진열된 샤넬 2.55 핸드백 중 하나를 가리켰더니 칭찬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이 돌아왔다. 남이 쓰던 가방을 350만원이나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없어서 못파는 제품이다.

요즘 중고명품 가게에서 샤넬 2.55 다음으로 자주 보이는 것은 루이뷔통의 베르니 라인이다. 한때 백화점에서 197만원에 팔렸던 베르니 배드포드는 지난해 단종됐다. 구입한지 3년 됐다는 중고 베르니의 몸값은 90만원.

신제품일수록 값을 높게 쳐줄것 같아도 사실 핸드백은 ‘어떻게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리저리 험하게 굴린 제품은 단박에 표가 나고 되팔 때도 하락폭이 크다.

‘지영이 백’으로 불리며 거리를 장식했던 루이뷔통 스피디는 되파는 사람도 많았던지 선반 두 개를 꽉 채우고 있다. 사이즈별로 진열된 스피디는 루이뷔통 특유의 태닝(미색 가죽이 햇볕을 받아 갈색으로 변하는 것) 덕분에 각각의 세월을 유추할 수 있다.

중고명품 업체가 물건을 들일 때 상한선은 따로 없지만 하한선은 분명하다. 업체 6곳에 문의한 결과 버버리와 코치 등은 받지 않는다는 곳이 5곳이나 됐다. 구찌의 경우는 ‘신형이면 가져와보라’고 했지만 ‘많이는 못준다’고 못을 박았다. 이렇듯 특정 브랜드에 인색한 이유는 딱 하나다. 이미 아웃렛에 입점한 브랜드인데다 백화점에서도 종종 세일을 하기 때문이다.

매스티지 브랜드(값이 저렴한 대중명품)로 인식되는 메트로시티나 MCM, 에트로를 매입하는 곳도 있다. 이런 제품은 2만∼3만원에 매입해 10만원 이하에 판다. 이런 제품의 주고객은 ‘한창 멋부릴 나이의 10대 소녀’들이다.

■빠른 처분땐 ‘매입’, 희망 가격엔 ‘위탁’

명품을 되파는 수단에는 위탁과 매입, 두 가지가 있다. 위탁은 말 그대로 중고명품 매매업자에게 판매를 맡기는 것이다.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지만 시세를 무시하긴 힘들다. 파는 이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면 업자들은 시장 가격을 알려주고 값을 깎는다.

매입은 중고명품 매매업자가 그자리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가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해당 제품을 감정한 뒤 일방적으로 가격을 매긴다. 당장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어 좋지만 흥정을 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통상 물건 가격은 매입보다 위탁이 높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위탁은 물건이 팔려야만 돈을 지급한다. 중고명품 가게에 물건을 전시해 둔 기간에 입을 수 있는 상품 훼손도 판 사람이 떠안아야 한다.

드문 경우지만 매매업자가 그대로 잠적하는 일도 생긴다.

‘중고명품의 메카’로 불리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초입에는 작은 규모의 중고명품 가게들이 몰려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위탁을 선호하지만 한정판 상품이나 인기 브랜드 제품 등 ‘탐나는 물건’을 보면 적극적으로 매입 의사를 표시한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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