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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匠人’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4호 박창영 갓일 입자장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9.09 16:13

수정 2010.09.09 16:13

▲ 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 박창영씨까 박쥐 문양이 새겨진 갓을 세심히 살펴보고 있다. 이 갓은 보통 평민들이 사용할 수 없고 부호나 귀족, 사대부들이 사용했다. /사진=박범준기자

"갓은 조상들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의관일 뿐 아니라 멋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선비들의 삶을 떠올리며 갓을 만들어온 삶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4호 갓일 입자장(笠子匠) 박창영씨에게 갓일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만은 아니다.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4대째 130년 동안 이어진 가업을 통해 박씨가 터득한 삶의 자세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자리한 허름한 2층 주택, 살림집과 다름없어 보이는 이곳 한쪽엔 갓 만드는 장인의 공방이 딸려 있다. 지난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박창영(68)씨가 갓일하는 곳이다.

■4대째 130년 넘게 이어진 갓일

그의 고향인 경북 예천군 돌티마을은 갓의 명산지로 유명했다. 당시 갓 하나의 값이 쌀 다섯 가마니와 맞먹을 만큼 가치가 높아 마을사람 대부분이 이 일에 매달렸다. 그의 증조부 때부터 시작된 갓일은 가족의 주요 소득원이었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난 그 역시 자연스레 어깨너머로 갓 만드는 일을 자연스레 익혔다. 그리고 어느덧 가업을 물려받은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10대 후반부터 선친께 본격적으로 갓일을 배웠지요. 20대 때는 고향에 갓방을 차려 운영도 했지만, 갓의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좌절감이 크던 터에 묘안을 짜내 1978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가 생각해 낸 묘안은 바로 방송국에 갓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TV 드라마나 영화 속 사극의 인물들이 갓을 쓰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영화 '스캔들'에서 주인공 배용준이 쓰고 나온 갓과 KBS 1TV 드라마 '거상 김만덕' 등 사극에서 배우들이 쓰고 나오는 갓은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무작정 방송국 국장님을 찾아가 '내가 만든 갓을 써달라'고 했지요. 품질엔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TV사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갓은 거의 제 손으로 만든 거라고 보면 됩니다."

■갓일, 생계보다는 사명

그는 생계보다 갓일을 더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바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갓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일이다. 갓을 만드는 대부분의 시간도 여기에 쓰인다. 그는 궁중유물전시관에 소장된 '철종어진'에 나오는 갓인 전립(氈笠)을 비롯해 사대부들이 주로 썼던 박쥐모양 갓과 국상 때 주로 썼던 백립(白笠) 등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런 갓 하나를 재현하는 데는 1년여가 걸릴 정도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일을 온전히 저 혼자 해내야 하거든요. 유물을 찾아다니며 예전의 갓을 세심히 관찰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 후 머리카락만큼이나 얇은 대나무인 세죽사(細竹絲)를 하나하나 엮어 모자 부분을 만들고 이어 양태를 엮습니다. 세죽사 가닥마다 명주실을 하나하나 붙이는 작업도 해야 하지요. 먹칠과 옻칠도 해야 하고요. 그리고 모자와 양태를 모아 곡선을 이루도록 모양을 잡아야 합니다.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지요."

까다롭고 섬세한 공정을 모두 익히려면 짧게 잡아도 10년은 족히 걸린다. 작업과정에서 화로에 담긴 숯으로 인두질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인내심도 필요하다.

"갓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이도 몇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우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그만둡니다. 화로를 끼고 방바닥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주야장천 앉아 있질 못 하더라고요."

주로 앉아서 하는 일이라 체력관리를 위해 젊었을때는 권투도 배웠다.

"취미 삼아 했던 건데, 경북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지요. 제 동료가 웰터급 동양챔피언을 지낸 이춘산입니다. 프로 전향도 잠깐 생각했지만 제 갈 길은 역시나 갓일이었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복싱이 제 인내심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입니다."

■5대째 전통의 맥 잇는다

소중한 전통의 맥을 이을 후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터에 그의 장남 형박(36)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선뜻 나섰다. 고등학교 때부터 갓일을 도왔던 형박씨는 2001년에 문화재청 전수장학생으로 뽑혀 현재 '이수자' 단계에 있다. 박창영씨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듬해의 일이다. 형박씨는 지난달 35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출품작인 '흑립'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형박이는 홍익대학교에서 의상학으로 석사를 하고, 현재 단국대학교에서 전통의상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어요. 갓 제작기법 등과 관련해 박사 논문을 쓰려고 준비 중이고요. 기특하지요. 5대째 명맥을 이어 나가게 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고요."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는 둘째아들 형언씨 역시도 틈틈이 갓일을 배우고 있다.

"제 눈엔 아직 아들들의 부족한 점만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갓일을 해 나간다는 점이 훌륭한 거지요. 제가 되도록 많은 전통갓을 재현해 물려주고자 합니다. 형박이가 제가 재현할 가치가 높은 갓을 직접 발품을 팔아 많이 발굴하고 있어요. 제가 하던 일을 이제 아들이 계속해 나갈 겁니다."

2007년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지난 7월 인사동에서 또 한 차례 그간의 작품을 선보였다.

"과거 선조들이 만든 갓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지요. 이제 갓을 찾는 이들은 없지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갓일은 제가 평생 놓을 수 없습니다."

/mskang@fnnews.com강문순기자

■갓은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 중의 하나로 원래는 햇볕,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모자였으나 주로 양반의 사회적인 신분을 반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갓은 넓은 의미로 방갓형과 패랭이형 모두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흑립·칠립·평립이라고 부르며 갓일은 갓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凉太), 입자(笠子)로 나뉜다.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갓대우(갓모자) 부분을 말꼬리털 또는 목덜미털을 사용해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서 레코드판처럼 얽어내는 과정을 말하며 입자는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세 가지 공정은 따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며 갓방에서도 사장일·곱배기일·갓모으는 일 등으로 분업화돼 4명이 한 번에 50개 정도 제작한다.

갓일은 그 기술이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여 이를 습득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세죽·말총 등에 관한 민속공예로도 중요하다.

우리 민족의 의생활에서 필수품목의 하나였던 갓은 의복의 변화와 단발령 이후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통영, 예천, 제주 등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문화재 보전차원에서 1964년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기능보유자로는 입자장에 정춘모, 박창영, 양태장에 장순자, 총모자장에 강순자가 있다.

인터뷰 동영상 tv.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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