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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리어,호텔을 말하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이철희 대표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9.23 17:19

수정 2010.09.23 17:19

"무슨 일로 왔니."

말투는 딱딱했고 분위기는 냉랭했다. 그곳은 친한 친구의 집이었다. 친구 부모님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봤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가 호텔에서 일하기 때문이었다. 20대 청년의 가슴엔 새파란 멍이 들었다.


"제가 막 호텔에 취직했을 땐 '호텔리어'란 개념조차 없었어요. 어른들 보시기엔 여관의 조바(잔심부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정도였죠."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이철희 대표(52)는 담담하게 옛 상처를 꺼냈다. 이 대표는 1989년 이 호텔(옛 아미가 호텔)에 입사했다.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전에도 짧게나마 호텔리어 경력은 있지만 그때는 '이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많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처음 맡은 일은 기획심사였다. 말 그대로 기획은 사업을 계획하는 것이었고 심사는 계획된 일의 수익성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엔 모순이 좀 있죠. 제가 계획한 일을 제가 검토하는 식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프로젝트의 전과 후를 모두 관장해야 해서 업무량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일은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그는 아예 호텔에 숙소를 마련하고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의 침실은 회장실 옆방. 회장이 부르면 언제라도 곧장 달려갈 수 있는 구조였다.

"호텔업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올림픽을 치르고 유명 해외 호텔이 들어오게 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죠."

국가적인 비극인 1997년 외환위기도 호재로 작용했다. 헐값에 산 한국기업을 팔아 수십배의 차액을 누린 외국인 기업사냥꾼들은 한국에 머물며 펑펑 돈을 썼다. 호텔 업계는 이들 덕에 높은 매출을 올렸지만 내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다.

2년 뒤엔 당당하게 기뻐할 수 있는 일도 생겼다. 특2급이던 호텔이 특1급으로 승격된 것이다. 최고 등급의 호텔이 되자 외국 유명 체인 호텔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외국 브랜드로 간판을 바꿔달 수도 있었지만 결국 '아미가'를 '임피리얼 팰리스'로 바꾸고 토종 브랜드를 지키기로 했다.

"국내에서 특1급이라면 대개 외국 체인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들입니다. '남의 힘 없이 이만큼 온 게 어디냐. 우리의 잠재력을 믿어보자'는 게 중론이었어요."

모든 사업이 그렇듯 기댈 언덕이 없으면 고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임피리얼 팰리스의 최근 성적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지난 3월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IP 부티크 호텔'의 성적은 놀랍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나 내년 말께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이었지만 이곳은 오픈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IP 부티크 호텔 건립은 제가 반대를 했습니다. 사업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죠. 호텔 부지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땅 주인이 수년째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곳이었으니까요. 이렇게 효자상품이 될지는 몰랐어요."

일은 이상하리만치 쉽게 풀렸다. 남들은 몇년째 명함을 내밀어도 못 사던 부지를 그는 10분간의 짧은 협상 끝에 사들였다. 번듯한 호텔이 들어서자 호텔 가뭄에 시달리던 이태원에도 숨통이 트였다. 이곳은 현재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과 대사관 관계자들이 즐겨 묵는 장소다.

이 같은 '대박'은 호텔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투자 대비 수익이 적은 데다 성장 동력을 찾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일본 후쿠오카에 'IP 호텔 후쿠오카'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필리핀 세부에 '임피리얼 팰리스 워터파크 리조트 & 스파'를 오픈했습니다. 지금도 2, 3곳의 해외 진출을 타진 중이에요."

국경을 넘어선 성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그는 5년 내에 적당한 때를 잡아 물러나고 싶다는 뜻을 표한다.

"호텔을 찾는 손님들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요구와 감각을 파악하려면 호텔리어들도 젊어져야죠. 저 역시 젊은 직원들과 자주 어울리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요.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이 말 끝에 그는 문득 후회 섞인 고백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이 지긋한 선배들에게 참 못되게 굴었어요. 후배들을 위해 물러나달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정작 나이를 먹고 보니 그런 것들에 종종 마음이 아파요. 그 말에 어긋나지 않게 저 역시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터주고 싶기도 하고요."

후회 없이 일했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그는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칭찬받고 싶다고 말한다.

"토종 호텔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에 20년 넘게 한곳에서 일했습니다.
유명 브랜드 호텔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대신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는 데다 한국이란 나라를 알리고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wild@fnnews.com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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