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시장만능주의의 종언/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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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터진 뒤 글을 쓰는 게 영 불편해졌다. 위기 이전엔 시장만능주의를 찬양했으나 지금은 시장만능주의의 부작용을 꼬집을 때가 많다. 후안무치가 아닌 다음에야 낯 부끄러운 일이다. 구체적으로 위기 이전엔 국민연금을 민영화하자거나 글로벌 스탠더드가 시대정신임을 힘주어 말하곤 했다. 같은 맥락에서 론스타의 ‘먹튀’를 애써 옹호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복지 확대의 불가피성이나 코리아 스탠더드를 주장하고 있다. 핫머니에 대한 자본통제(Capital Control)도 적극 찬성한다.

천만다행인 것은 나만 바뀐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변신에 능하다. 최근 IMF는 자본통제가 금융시장 안정을 꾀하는 적법한 정책수단임을 인정하고 있다. ‘통제’라는 말만 나와도 눈을 부라리던 과거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브라질·태국 등 신흥국들이 자본통제에 나섰으나 IMF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아니, 되레 통제를 장려하는 듯한 분위기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10월 25일자)에서 “분명히 당신의 할아버지가 보던 IMF가 아니다(Not your grandfather’s IMF, to be sure”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무한경쟁을 부추기던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고하려는 찰나 ‘공정’을 선점했다. “친기업을 외치던 대통령이 왜 갑자기 달라졌느냐”며 의아해 할 것 없다. 대통령에 앞서 세상이 먼저 달라졌으니까. 한나라당 내 감세 철회 논쟁도 변화에 민감한 이와 둔감한 이의 갈등이다. 사실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신념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는 시장의 무오류성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냥 놔두면 시장이 다 알아서 하니까 ‘시장자본주의론’의 일자일획도 건드리지 말라는 거다.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존 퀴긴 교수는 최근 ‘죽기를 거부하는 다섯가지 좀비 경제 아이디어’라는 글을 ‘포린 폴리시(FP)’에 실었다. 그 예로 그는 호황이 지속된다는 믿음, 효율적 시장 가설, 트리클다운(Trickle Down) 가설, 민영화 등을 들었다. 좀비는 죽었다 다시 살아난 시체를 말한다. 그가 꼽은 ‘좀비 5적’을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시장만능주의다.

호황이 지속된다는 믿음은 뜨겁지고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경제에 대한 환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의 저자인 케네스 로고프 교수(하버드대·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망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가 중세 때인 1200년부터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장장 800년에 걸쳐 66개국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론은 “이번엔 다르다는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옮겨보자. “금융위기 직전에 경제호황이 발생하고, 반복되는 가장 값비싼 조언은 ‘이번엔 다르다’였다.” 로고프 교수에 따르면 빚으로 지탱하는 경제는 언젠가는 무너지게 돼 있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요란하게 선전한 트리클다운 효과 역시 과대·허위광고로 드러났다. 부자가 더 잘살면 그 혜택이 가난한 이들에게도 돌아갈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부자들은 더 잘살게 됐지만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졌다. 시장만능주의는 우리 사회에 소득 양극화라는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계층 간 이질감은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슈퍼스타K2에서 우승한 ‘루저’ 허각은 88만원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게 허리층이 유실된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대처·레이건 이래 한 시대를 풍미한 시장만능주의는 지속불가능 판정을 받았다. 앞만 보지 말고 가끔 옆도 살피고 뒤도 돌아보라는 신호다. 분명 경쟁과 효율의 터전으로서 시장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정글이다.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시장만능주의는 몽상가들의 허무한 실패로 막을 내린 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서있다. 극단에 서면 늘 위태롭다. 이 보편적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나도 참 한심하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