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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匠人’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89호 구혜자 침선장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25 17:05

수정 2010.11.25 17:05

▲ 한복의 매력에 반해 40년 동안 한복을 짓고 있는 침선장 구혜자씨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옷을 짓고 있다. 2007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침선장으로 지정된 구씨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후학들에게 침선을 전수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한복은 옷 입은 사람이 움직여야 비로소 감춰져 있던 아름다운 선이 드러나게 됩니다. 한복은 치마를 입어야 입체성이 살아나고 움직일 때 몸의 곡선이 만들어지죠. 그래서 한복의 멋은 부드러운 선에 있는 겁니다."

한복의 매력에 반해 40년 동안 한복을 짓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89호 침선장(針線匠) 구혜자씨. 서울 삼성동의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만난 그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옷을 짓고 있었다.

한복의 매력은 부드러운 선에서 완성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치마는 저고리에서 시작해 아래로 일직선으로 흐르지만 동시에 입은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으로 순간순간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2007년 7월 중요무형문화재 침선장으로 지정된 구씨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통공예건축학교·궁중복식연구원에서 후학들에게 침선을 전수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긴 세월의 노력 끝에 명장의 반열에 오른 그이지만 언제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적지 않아요.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처음엔 겉으로만 받아들였던 것들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다시 고민하게 되죠."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성실함은 그의 오늘을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바느질은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발전이 있어요. 특히 이 일을 직업으로 하려는 사람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구씨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복 만드는 일은 '짓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집을 짓듯이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한복과의 긴 인연은 1970년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 맏며느리로 시집온 그는 1대 침선장이었던 시어머니(정정완·2007년 작고)를 모시고 살았다. 단지 가족들을 위해 옷 몇 점을 지을까 하는 생각에 바늘을 잡았다.

"처음에 바느질을 배우겠다고 하니까 시어머니께서 '하고 싶으면 해라'고 하시는데 좋아하시는 건지 도무지 의중을 알 수가 없었어요. 아마 집안일을 소홀히 할까봐 내심 걱정이 되신 거지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한복을 만드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위질부터 서툴렀고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옷감이 귀한 시절에 가위질을 잘못해 혼쭐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친정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한테서 배우려니 얼마나 더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겠어요. 한 번은 가위질 실수를 하고 나서 어머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냥 뒤로 돌아앉아 버렸어요. 이를 악물고 밤을 새우다시피 바느질을 연습했어요."

구씨는 바느질을 가르쳐준 시어머니가 세상을 등졌을 때 제일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삶의 스승으로서 평생 의지하고 지냈던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 캄캄했다고 한다.

"다른 일로는 단 한 가지도 말씀을 들은 일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꾸중 들으며 배운 게 바로 이 일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웬만큼 흉내를 냈구나'라고 하신 게 당신에게서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죠."

스승이자 침선장 대선배이기도 한 시어머니가 전통 복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계승했다면, 며느리 구씨는 이를 체계화하고 계량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한복 제작뿐 아니라 조선시대 복식사 연구와 재현 작업도 꾸준히 이어왔다.

우리 민족의 자산인 한복의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전통도 지키고 입기도 편해야 보급이 잘 되죠. 그 길이 멀게만 보이니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가 봐요."

"시어머니도 저도 옛날엔 다 도제식으로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부유한 집안이라 침모가 따로 있었지만 워낙 당신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셨어요. 옛날엔 한복을 만드는 게 삶 그 자체였지요. 한 달에 두세 번은 어르신들 옷을 빨아서 갈아입게 해드려야 했는데 그냥 세탁만 하는 게 아니라 다시 각 부분을 죄다 뜯어서 다시 풀을 먹이고, 새 옷을 짓듯이 다시 바느질로 하나하나 꿰매 옷을 만들어야 했어요."

여자 치마, 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 데 손바느질 보름이 걸린다고 한다. 재봉질로 하면 5일 만에 해치울 양이다. 바느질 한땀마다 옷을 짓는 이의 숨결과 실력이 함께 꿰매진다.

"손바느질로 하면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담겼다는 가치도 있지만 재봉질로 만들면 옷 선이 다소 거칠고 딱딱해지는 반면 손바느질로 만든 건 옷 태가 아주 부드럽게 나와요. 엄연히 다르지요. 대신 바느질을 아주 잘 해야만 해요."

전통 바느질이 쉽지 않음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더 확연히 드러난다. 구씨는 현재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맡고 있다. 수강생은 의상학과 학생들에서부터 전업 주부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계층이 다양하다.

약 1개월은 기초 바느질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고유의 신생아 옷인 아기 배냇저고리로 첫 습작을 지도한다. 한달쯤 지나 완성되면 아기 백일 옷 만들기 단계로 넘어간다. 이 무렵이 경계선이다. 적성과 인내력이 맞지 않는 경우 이 단계가 지나면 기권자가 속출한다. 강의 시작 2개월쯤이면 애초의 수강생 중 3분의 1이 사라지고 없다.

난이도는 점점 높아진다. 1년차쯤 되면 성인 옷을 시도하고 2년차면 전통 예복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3년차면 혼례복까지 손수 바느질해 만들어 볼 수 있다. 최소한 3년은 배워야 침선의 기본을 맛보는 정도다.

구씨가 가장 즐겨 만드는 의상은 남자의 포 종류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입혀지기 시작한 행사용 의상이다. 조선시대의 남자 복식은 요즘의 여성 의류 못지않게 다양하고 아름답다. 색이나 모양을 자연의 동식물에서 본떠 온 것들이 많다. 조선시대 복식사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옷 이야기도 많다.

"점점 쇠락해가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 분야의 전반적인 추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 분야는 일반인들의 관심도 많고 실제로 '입는 옷'이다 보니 그래도 사정이 좋은 편이에요. 쓰임새를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경우에는 상업적인 옷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큰 수입을 올린다든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mskang@fnnews.com강문순기자

■침선(針線)이란 바늘에 실을 꿰어 꿰맴을 말하는 것으로 복식의 전반이라 할 수 있다. 복식이란 의복과 장식을 총칭하므로 그 범위는 바늘에 실을 꿰어 바느질로써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침선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침선장이라 한다.

사람이 바느질을 시작한 것은 역사 이전부터였다고 한다. 지금의 바늘과 흡사한 신라시대 금속제가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침선이 고구려 벽화나 '삼국사기'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발달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침선에 필요한 용구로는 옷감, 바늘, 실, 실패, 골무, 가위, 자, 인두, 인두판, 다리미, 다리미판, 못바늘 등이다. 옷감으로는 주로 비단, 무명, 모시, 마 등이 쓰인다. 실은 무명실을 많이 사용하며 실의 선택은 옷감의 재질, 색상, 두께 등에 따라 달라진다.

바느질 방법은 기초적인 감침질과 홈질, 박음질, 상침질, 휘갑치기, 사뜨기, 공그리기 등으로 옷의 부위에 따라 필요한 바느질 법을 사용한다. 계절 변화에 따라 여름에는 홑으로 솔기를 가늘게 바느질하고, 봄·가을에는 겹으로 바느질하며, 겨울에는 솜을 넣어 따뜻한 옷을 만든다.

예전에는 여자면 누구나 침선을 할 줄 알아야만 했기에 집안에서 바느질 법을 익히고 솜씨를 전수받아 침선법이 계속 이어져왔다. 궁중에서도 침방이 있어 기법이 전승된 때도 있었으나 전승자가 다 작고하고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계승해왔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불가능하게 되었다.

1대 침선장 정정완 선생에 이어 현재는 그의 며느리인 구혜자가 중요무형문화재 침선장 기능보유자로 우리의 고유한 침선 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구혜자 중요무형무화재 제89호 침선장 약력△68세 △1989∼1999년 전승공예대전 입선·장려상·특별상 △2004년 국립한경대학·배재대학교 강사 △2007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2010년 전통공예건축학교 강사·궁중복식연구원 강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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