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중소기업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실리콘밸리에 들러 현지 벤처 창업과 투자환경을 살펴본 일이 있다.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녹색기술과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첨단기술로 무장한 수많은 기업이 새로 태어나는 곳, 애플이나 구글·페이스북과 같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거대 기업의 발상지, 바로 실리콘밸리의 생생한 현장을 보게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저력은 창업과 투자의 선순환에서 발생
'기술창업의 요람'으로 일컬어지는 실리콘밸리는 현장 중심의 체계적인 창업교육부터 유망한 창업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와 성장지원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지원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 주도로 이뤄졌을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형성에 미국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은 스탠퍼드대학교는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센터가 무려 30여곳에 이르며, 이들을 통해 현장 중심의 창업교육이 진행되고 창업 친화적인 대학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또한 대학 인근에는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서로 투자하겠다는 벤처캐피털이 줄을 서 있다. 게다가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선배 최고경영자(CEO)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업가정신과 창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으며, 멘토로서 직접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인도 부지기수다.
대학과 벤처캐피털, 기업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에 의해 창업과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성공신화가 다시금 창업과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구조가 자연스럽게 구축돼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보다 5년이나 앞서 창업한 싸이월드는 인맥구축서비스(SNS)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지만 투자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고 글로벌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반면 페이스북은 가능성만 보고 투자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덕분에 수년간 버티며 기업을 키울 수 있었고 지금은 기업가치가 1000억달러를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창업아이템이나 경영전략이 아니라 벤처생태계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민·관이 힘을 합쳐 벤처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다행히 최근 들어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우리 벤처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고민하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청년 기술창업의 지역별 거점 역할을 하는 15개의 창업선도대학을 선정해 지원 중이며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지난 4월 수립한 '글로벌 창업 촉진대책'에 따라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도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벤처 붐 조성에 앞장서고 있으며, 창업 관련학과를 개설하거나 기업가정신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이 속속 늘고 있다.
언론사와 대학, 벤처캐피털 등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창업경진대회도 눈에 띄게 많아졌고 '벤처 7일 장터' '벤처투자 사랑방' 같은 멘토링 프로그램, 성공한 벤처 1세대를 중심으로 엔젤투자와 밀착형 멘토링이 결합된 '프라이머' 사례 등도 우리 벤처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에서 국가와 기업·개인 차원에서의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세계를 무대로 경쟁과 협력이 일어나는 현장을 생생히 묘사했다.
'제2의 벤처 붐'이 가시화되는 이 시점에서 정부와 대학, 기업, 벤처캐피털이 힘을 합쳐 역동적인 벤처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평평한 세계'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이번 실리콘밸리 방문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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