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鐵人박태준,그에 얽힌 사연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1927∼2011). 그는 군인이자 기업가, 또 정치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긴 안목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진 사람이었다. 박 회장을 추억하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그의 인간됨과 삶의 깊이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3년 이맘때쯤 일본 도쿄의 작은 선술집. 그곳은 아주 비싸지도, 그렇다고 허름하지도 않은 여느 일본 음식점이었다. 주인장은 예순 중반의 노인과 타국에서 고생하는 유학생들을 최고급 회로 극진히 대접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노인은 유학생들을 말벗 삼아 조국의 정치판과 지난날 격동의 시기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곱씹었다.

15일 전남대 전자컴퓨터공학부 이칠우 교수(53)는 교육자로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소개했다.

지난 13일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군인이자 기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교육에 대한 헌신과 선견지명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교수는 고인이 1985년부터 추진한 제철장학회(현 포스코 청암재단의 전신)의 해외유학생(이하 포철장학생) 4기생이다. 이 장학생 모임은 현재 포스코 월드 아카데미 클럽(PWAC)으로 불린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5개국에 각 한명씩 유학생을 보내는 사업이었다.

"1986년 어느 토요일 오후였어요. 필기를 통과해 면접에 들어갔는데 박태준 회장께서 직접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항간에 마음에 들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면접을 보고, 마음에 안들면 5분 만에 내보낸다고 했는데, 저보곤 5분 만에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이 교수는 허탈한 마음에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총 5명의 합격자 중 한 명으로 통보를 받고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됐다. "자네는 처음부터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안봐도 될 것 같아서 나가라고 했지." 박 명예회장의 호탕한 설명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일본 도쿄대에서 유학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포철장학생은 유학비 지원액으로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의 문부성 장학생 지원비(당시 대기업 입사 초봉 수준)와 비슷했으며 논문제출, 해외학회 참여 등의 경비를 추가적으로 지원해줬다. "큰 자부심를 갖고 공부했죠. 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전자공학, 생물학, 화학, 정치외교 등 각분야에서 장학생들이 공부했습니다."

그 무렵 박태준 회장은 포스텍(포항공대) 설립에 착수한다. 그는 이날 신라호텔 만찬에서 "학생들이 공부만 잘할 수 있다면 포항공대 벽에 금칠해 달라고 하면 금이라도 바르겠다"고 말했다. '기업엔 한계가 있어도 교육엔 한계가 없다'는 그의 지론을 드러낸 대목이다.

총 71명이 포철장학생으로 배출돼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선진 기술과 학문을 익혔다. 이들 중 20여명은 해외에 체류 중이며 51명이 국내에서 대학교수, 기업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포철장학생 제도는 1994년 11기를 끝으로 중단됐다. 1994년 김영상 정부 시절 포철에서 '박태준 색채 제거하기' 일환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일본 망명 시절, 일본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서 기거했다. 당시 그의 소중한 말벗은 자신이 직접 뽑은 일본 유학 포철장학생들. 말술이기로 유명한 박 명예회장은 이들을 집으로 불러 한 명, 한 명 술잔을 기울이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일일이 챙겼다. 그러면서 "포철에서 너희들 장학금, 그 돈을 어떻게 버는지 알지 않느냐. 헛되게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다는 포철장학생들과 마지막으로 조우했던 건 지난 3월이었다. 머리가 희끗해진 이들은 이제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교수, 기업체 임원이 됐다. 이들에게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중요한건 '윤리'다. 세계 각국에선 기업 간의 상도덕, 국가사회의 윤리 중요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그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이들에게 준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이 교수 등 포철장학생 14명은 15일 오전 10시30분께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태준을 기리며 단체로 조문, 눈시울을 붉혔다.

/ehcho@fnnews.com조은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