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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밥그릇 싸움의 희생양/정보미디어부 부장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2.05 16:45

수정 2013.02.05 16:45

[이구순의 느린걸음] 밥그릇 싸움의 희생양/정보미디어부 부장

새 정부의 공식 출범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태어나는 새 정부는 △창조경제 △미래 먹거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두 축으로 설계하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아 위기를 돌파해 대한민국의 성장을 일궈낸다는 밑그림을 그려놨다.

그런데 새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밑그림이 완성된 그림을 향해 채 붓을 들기도 전부터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새 정부 창조경제의 앞날이 오리무중"이라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등 총 8개 부처의 기능을 합쳐 창조경제와 미리 먹거리를 실현해야 하는데 기능을 이관해야 하는 각 정부부처가 제 밥그릇을 먼저 챙기느라 미래창조과학부로 기능을 이관하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창조경제를 담당할 정보통신기술(ICT) 전담조직은 출범도 하기 전에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린 그림의 반쪽짜리로 전락할 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디지털 창조경제의 핵심 콘텐츠인 게임산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방송영상산업 역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길 수 없는 고유 업무라고 깔고 앉았다.

지식경제부는 소프트웨어산업의 일부를 넘겨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놨다.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기로 한 지경부의 신성장동력 발굴 기획업무는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기획업무만 이관하는 것인지, 신성장동력사업 전체를 이관하는 것인지 문구 해석을 놓고 공무원들이 모여 입씨름을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정부통합전산센터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결국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단말기(D)'로 이어지는 ICT산업의 컨트롤타워를 세워 창조경제의 새로운 '틀거리'를 세우자던 새 정부의 밑그림은 벌써 콘텐츠에서, 플랫폼에서 절반 이상 잘려나가게 된 셈이다.

각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연일 국회와 인수위원회를 찾아다니며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할 업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갖은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고도 한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업무 이관을 줄이겠다고 발벗고 나서는 것은 인력과 예산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보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기존에 문화부나 행안부, 지경부 공무원들은 게임산업, 소프트웨어산업에 대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이렇게 뛰어다닌 적이 없었는데, 조직 축소 얘기가 나오니 지난 5년간 뛰어다닌 것보다 더 많이 뛰어다니고 있더라"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공무원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새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에 갈 길을 잃은 셈이다.

반쪽짜리 미래창조과학부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ICT산업 전체가 나침반 없는 '깜깜이 항해'를 하던 지난 5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당장 게임업계는 여전히 문화부와 미래창조과학부를 오가며 어느 정책에도 기댈 수 없게 되고 미래 스마트서비스의 핵심인 방송 융합서비스는 자칫 미래창조과학부, 방통위, 문화부를 모두 찾아다녀야 할 판이다.


20여년간 구호만 난무했던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의 꿈은 다시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산업통상자원부로 나뉘어 어느 한 곳도 정책 성과를 책임지지 않는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무원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지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정리해주기 바란다.
해마다 수십만 국민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의 차세대 먹거리를 마련해 창조적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이 자기 밥그릇만 들여다보는 공무원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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