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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민주주의와 도덕성/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5.22 16:26

수정 2013.05.22 16:26

[fn논단] 민주주의와 도덕성/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하…그림자가 없다'에서 광복 이후 이제는 아주 흔해 빠져 버린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통 민주주의 하면 독재가 떠오르고, 그에 저항하는 재야세력이나 학생운동이 떠오르지만 이 시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에서 누구와 싸워야 할지 그 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 민주주의의 적이라 하면 독재자와 그의 하수인 그리고 부패한 공무원이나 악덕 기업주 등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김수영은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고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며 심지어 '선량하기까지도 하다'고 말한다.

한발 더 나아가 김수영의 시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적은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양민이라고도' '회사원이라고도' 한다.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요리집엘 들어가고/술을 마시고 잡담하고/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영화관에도 가고/애교도 있다.
' 말하자면 그들은 바로 우리와 같다. 아니 김수영이 말하고자 한 우리의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 땅에 도래한 지 어언(아니, 겨우?) 70여년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 압도적 영향을 미쳤던 정치세력은 미 군정이다. 이들은 북한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자유민주주의적 제도를 측면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이 땅에는 역사상 최초로 소위 의회라는 것이 생기고 대통령이 선출되고 행정부가 구성됐으며 헌법이 제정됐다. 명실상부한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최초로 만들어지고 개헌을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해 보통선거라는 것이 행해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식된 것이었기에, 다시 말해 '레미제라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의 자발적 변혁에 의해 제도화된 것이 아니었기에, 더군다나 전쟁을 거치면서 사회가 더욱더 아수라장처럼 변했기에, 민주주의적 삶은커녕 누구나 모두가 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위 '만인에 의한 만인의 싸움'이라는 홉스적 현실 속에서 이기적인 자기보존 본능만이 판을 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원칙은 사라지고 이익을 위한 대립만이 남아 그 이익을 위한 힘, 혹은 세력이 대단히 중요하게 됐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간에 어디에서도 힘을 위해 세력화하고 세력의 힘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익집단이 난립하게 됐다. 이러한 이익 지상주의야말로 대한민국의 앞날을 민주주의로부터 후퇴시키고 소수의 이익집단에만 특혜를 주게 되는 비민주적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비단 정치 영역에서만 운위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제나 사회의 영역에서 김수영의 표현대로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그 일상의 중심에 항상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익집단의 이익에 대한 요구가 도를 넘어서는 것 같다. 그 이익의 뒤에서 그 이익으로부터 소외돼 불이익(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한다면 민주주의란 다른 게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의 도덕성의 다른 표현이라 할 것이다. J J 루소는 아들 다섯을 모두 전쟁터에 보낸 어느 스파르타 여인을 예로 든 바 있다.
그 여인은 아들의 전사를 전하는 노예에게 "이 미천한 놈아, 내가 그 따위를 물었더냐"고 꾸짖고는 이에 노예가 승전보를 전하자 신전으로 달려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여인이 바로 민주적 시민이라고 했다.
나는 혹시 내 이익이나 이익집단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물어보는 것, 즉 민주주의란 이기적인 나와의 끝없는 싸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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