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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리더의 점심 약속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11 17:34

수정 2013.11.11 17:34

[fn논단] 리더의 점심 약속

'전략적 리더십'이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딜레마 상황이 조직의 중요업무 일정과 최고경영자의 갑작스러운 요구로 인한 일정이 중복될 때의 대처방법이다.

새로운 사업본부를 맡아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 전 직원과 공유하기로 한 시간에 갑자기 최고경영자가 점심 약속을 하자고 할 경우 참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회사마다 문화 차이로 인해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최고경영자를 설득해 점심 식사 약속을 다시 정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수용하고 만다. 이렇게 응답하면 상당한 감점을 당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없다거나 프로그램이 미국 문화를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적 맥락으로 볼 때 상급자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힘들고 게다가 말로는 점심 약속이지만 아주 긴요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는 터라 최고경영자와의 약속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의사결정의 결과가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구성원들과 더불어 새롭게 나가야 할 비전과 전략을 준비해 전체에게 알리고 공감을 통해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한 전체 공유 행사를 상급자와의 갑작스러운 약속 때문에 연기하거나 불참하게 된다면 단순히 '행사 불참'이라는 의미보다는 더 큰 상징적인 부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비전과 전략 공유 및 달성에 가장 중요한 경영자 스스로의 몰입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한다고 구성원들에게 비쳐지는 그 하나의 사건이나 이벤트가 조직 내에 상당한 부정적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비전이나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거나 그럴싸한 시작만 하고 실행 노력이 없이 용두사미로 끝나던 전임자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면 그 다음부터는 어떠한 혁신 노력도 최신 경영기법도 조직을 움직이기 어렵다.

리더의 몰입 없이는 구성원들의 몰입과 헌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준다는 것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부득이한 여건이라 하더라도 조직 구성원들보다 최고경영자와의 약속'을 선택한다면 그만큼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시뮬레이션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어떤 선택―비전과 전략공유행사 참석이냐, 최고경영자와의 점심 약속이냐―을 해야 용기, 경영자로서 이미지, 신뢰성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때 취해야 할 리더십의 '원칙'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그 상황에서 최고경영자를 설득해 점심 약속을 미루고 당초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알게 됐을 때와 그 반대였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경영자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성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칙'과 '현실'은 다르다는 데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령 여건상 지키지 못할지라도 '원칙'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는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원칙을 알 뿐 아니라 어렵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리더가 아닐까?

리더십의 구루인 워런 베니스 교수는 관리(Management)는 '일을 올바로 하는 것(Thing Do Right)'이고 리더십은 '올바른, 바른 일을 하는 것(Do Right Thing)'이라고 설파했다.
그래서 리더와 리더십 이론은 많지만 진정한 리더는 찾아보기 힘든지 모른다.

정재창 PSI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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