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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광고 속 명품시계는 언제나 ‘10시 10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14 16:49

수정 2013.11.14 16:49

[여의나루] 광고 속 명품시계는 언제나 ‘10시 10분’

흔히 못난(?) 눈이나 눈썹을 두고 '10시10분'이라는 표현을 한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 10시10분이 시계업계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명 시계의 본고장인 스위스에서 시계 마케팅 방법으로 시작된 것으로 시계 바늘을 10시10분으로 맞춰 놓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시침과 분침이 10시10분에 놓이면 시계판 전체의 각 360도 중 120도로 맞춰져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그 중간에 시계의 브랜드 로고를 얹어놓으면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판매를 촉진하려는 전략을 세우는 데 고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후발주자인 일본은 한술 더 떠 초침까지 이용해 시계판 원을 정확히 3등분하는 방법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안정감 있게 아름다운 시계모양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게 시계의 브랜드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 판매전략이다. 이렇듯 시계바늘 하나까지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이용했기에 전통적인 명품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시계 본연의 기능인 얼마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느냐 여부보다는 이렇게 만들어 진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시계의 값어치가 정해지니 브랜드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다른 예를 보자. 콜라 맛을 테스트하는 광고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눈을 가린 채 맛있는 콜라를 고른다면 늘 결과는 P사의 승리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브랜드를 보면서 맛을 보는 테스트를 하면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언제나 C사의 압승이라고 한다. 브랜드의 힘이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물리학과 교수인 리드 몽테규의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가 브랜드에 반응하는 것은 막연한 허상이 아닌 뇌과학으로 확인 가능한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브랜드가 보내는 신호가 미래에 가져다줄 보상, 즉 맛이나 효용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며 신뢰와 쾌락을 유발하는 물질을 분비시킴으로써 반응이 실제보다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실체가 없는 브랜드는 사상누각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만큼 브랜드 가치를 빨리 죽이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결국 품질이 기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지만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이미지 메이킹 된 브랜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는 소비자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곳곳에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들의 로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 데에서 또는 어두운 밤에 환하게 빛나는 브랜드 로고가 새로운 감회를 주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당당하게 빛나는 그 브랜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몇몇 기업인과 과학자의 힘과 그보다 훨씬 많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기술자, 근로자의 지혜와 노력이 오랜 기간 모아져서 오늘의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최근 모 그룹이 사실상 해체와 다름없는 수순을 밟아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경영상의 문제도 문제지만, 선량한 투자자의 피해가 커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금산분리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고 금융감독에 대한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요즘 말로 한방에 훅 가버린 또 하나의 브랜드 몰락이다.
창업주가 일생 동안 소중히 쌓아올린 별들이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진 브랜드 하나가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이런 소중한 무형자산이 지워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언제나 10시10분에 맞춰진 시계바늘 속에서 자랑스럽게 뽐내는 명품 시계처럼 말이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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