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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미술관과 문화융성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17 16:50

수정 2013.11.17 16:50

[차관칼럼] 미술관과 문화융성

지난주는 유난히 미술 관련 굵직한 소식들이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한 주였던 것 같다.

영국의 유명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1969년)이라는 삼면화 1점이 경매시장에서 무려 1528억원에 낙찰됐고 총 2460억원을 들여 4년 만에 완공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작품 단 한 점이 그런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의 중심지에도 생겼으니 한번쯤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베이컨은 미술을 정식으로 배워보지 못해 독학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터득했고 성적소수자였기 때문에 사회적 소외와 고독을 감내하면서 살았다. 그의 존재는 독특한 초상화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것도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찢겨져 이목구비 분간마저 어려운,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보여 참혹하기조차 한 그림들로 유명해졌다. 전후 현대인의 실존과 불안을 직설적이고 적나라하면서도 독창적으로 드러낸 작가는 베이컨이 독보적인데 그가 화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데는 1962년 영국의 국립미술관인 테이트갤러리에서의 전시가 큰 역할을 했다.
베이컨의 예술적 독창성과 성과를 최고의 안목과 전문성을 지닌 미술관이 발굴하고 평가해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베이컨은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여전히 추앙받는 위대한 화가로 남게 된 것이다.

이쯤해서 이제 과천관과 덕수궁관, 서울관이라는 3관 체제를 갖추게 돼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서의 틀을 마련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무엇일까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를 발굴하는 일, 그 작가의 예술만이 지닌 독창성을 연구와 전시를 통해 드러내는 일, 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일 등일 것이다.

지난 12일 있었던 서울관 개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금 "문화융성의 가치가 나라의 국격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의미 깊은 연설을 했다. 또한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상상력과 창조적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정신적인 풍요와 예술적 감수성을 가꾸는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10여년간 한국의 드라마, 영화, K-팝(pop)이 '한류'붐을 타고 한국인이 지닌 문화적 감수성과 예술적 감각이 얼마나 매력있게 세계인들을 매료시켜 왔는가를 필자는 문화행정의 일선에서 지켜봐왔다. 그러하기에 이번 서울관 개관은 뭔가 다른 차원에서 한국 문화예술이 세계인들에게 보다 의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한류' 확산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학, 음악, 미술 등 기초예술 분야에서의 새로운 아이템과 활동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서울관은 분명 세계인들의 시각을 사로잡고 새로운 미술문화의 가능성을 창출해내는 문화발전소로서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이다. 개관식 다음 날에 무려 5000명 가까운 관람객들이 새 미술관을 방문해 건축물 곳곳을 둘러보고 전시를 관람했다.


조선시대 종친부,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 의대, 근래까지는 기무사령부가 들어서 있던 이 굴곡 많고 사연 많은 땅에 이제 누구나 드나들며 미술작품을 보고, 즐기고,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뿌듯함이 그렇게 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문화융성이 그저 정치적, 행정적 그리고 언어적 수사만으로는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제 서울관이라는 멋진 그릇이 만들어졌으므로 여기에 우리 국민 모두의 지혜와 슬기를 모아 문화융성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조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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