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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캐럴과 경제 기사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16 17:03

수정 2014.10.31 10:19

[fn논단] 캐럴과 경제 기사도

연말이 가까워 오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가 1843년 발표한 글이다.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악착같이 일하던 스크루지는 그날 밤 쇠사슬에 감겨 고통 받고 있는 죽은 동료를 만난다. 이어 세 유령이 나와 돈만 아는 스크루지를 이끌고 그의 과거·현재·미래를 차례로 보여준다. 스크루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랑과 감사의 기쁨을 불우한 이웃과 함께 나누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크리스마스날 가난한 이웃과 조카에게 자선과 사랑을 베풀고 이야기의 결말은 '종업원의 월급을 올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앨프리드 마셜은 이 글이 발표되기 한 해 전 런던의 중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억척스레 직장상사에게 후원을 부탁한 덕분에 그는 좋은 교육을 받고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결실로 최절정기를 누리고 있었다. 국가는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강대해졌지만 현실 속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빈민들은 불결한 거리의 단칸방에서 희망 없이 살아야 했다.

국가는 부유한데 왜 근로자는 가난할까. 가난의 가장 큰 원인은 저임금이었다. 이에 진보주의자들은 고용주의 탐욕이 문제라며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젊은 시절 마셜도 사회주의자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린시절 삶에 찌든 빈민가 이웃과 함께 지냈던 그였기에 자신의 지식을 사회개혁을 위해 현실적인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경제학자로서 마셜은 가장 먼저 공장과 기업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얻은 각종 데이터는 자료집과 통계표로 정리됐다. 직종별, 숙련도별 임금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과정에서 마셜은 노동자의 임금이 전부 낮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숙련노동자의 임금은 비숙련노동자보다 몇 배나 높았다. 고용주는 숙련된 기술로 생산성을 높인 노동자에게는 기꺼이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임금 문제는 낮은 생산성의 단순노동에 있었던 것이다.

마셜은 감정적이고 선동적인 접근보다는 현장방문과 통계자료에 의거해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해법을 찾아냈다. 교육과 능력개발로 생산성을 높인다면 저임금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마셜은 노동자에게 최초로 커다란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미시경제학이 마셜에 의해 완성됐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기업은 생산을, 근로자는 임금을 높이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갔다. 경제학이 삶의 질 개선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는 생명력 있는 학문으로 태어난 것이다.


마셜은 경제학도들에게 '냉정한 두뇌와 따뜻한 마음'을 강조했다. 이것이 '경제 기사도'의 자세다.
약자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냉철한 과학적 분석방법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도의 사명이라는 것을 마셜이 몸소 보여주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파생상품시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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