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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 죄없이 철창에 갇힌 감시자들..교도관 K씨의 하루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15 17:41

수정 2014.10.30 15:28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 죄없이 철창에 갇힌 감시자들..교도관 K씨의 하루

오전 7시 요란한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깬 K씨는 반쯤 눈을 감은 채 화장실로 가 세수를 시작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고 나니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이 껄끄러워 먹을 수 있을까 싶지만 밥심이라도 있어야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만큼 억지로 밥을 먹는다. 주섬주섬 제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시각은 오전 7시50분. 남들은 외곽에서 시내로 출근하지만 그는 정반대 방향이다. 초년 시절 '출근 시간 교통난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교도관이라는 직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던 직속 선배 L교위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K씨는 오전 8시10분께 직장인 중부지역의 OO교도소에 들어섰다.
OO교도소는 지방교도소 중에서도 등급이 낮은 재소자들이 주로 수용된다. 별의별 재소자들이 다 있다 보니 교도관들도 그만큼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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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제약에 업무 긴장 높아

사무실에 들어와 이것저것 챙기고 정문 앞에 서니 오전 8시20분이다. 여기서 정문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문과 다르다.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사동으로 들어가는 문을 '정문'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교도소 입구의 정문은 '외정문'이다.

이제 정문을 들어서면 교도관도 사실상의 징역살이가 시작된다. 휴대폰은 물론 흡연, 독서까지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다 적발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근무가 끝나는 오후 6시까지는 900명이나 되는 '죄수'들을 관리하는 데만 전념해야 한다. 이들 중 K씨가 맡은 재소자는 60여명이다.

사동으로 들어가니 야간 근무자들이 눈에 띈다. 하룻밤 사이지만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이다. 취재진과 K씨를 보자 야간 근무자는 '무사히 근무가 끝났구나'하는 표정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수인계에 30분 정도 걸렸다. 20xx번은 열이 많이 나는 것 같으니 의무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고, 31xx번은 잔뜩 골이 나 있으니 꼬투리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인수인계에 포함됐다.

오전 9시30분, 야간 근무자들이 퇴근한 뒤 본격적인 주간조 근무가 시작됐다. 20xx번은 의무실로 보냈다. 상태가 안 좋다니 링거주사라도 맞으라고 해야 겠다. 출역 나가는 재소자를 따라 나가는 근무자와 사동에 남는 재소자를 관리하는 근무자들이 각각 나눠졌다. K씨는 출역 나가는 재소자들을 따라 나섰다.

이제부터 K씨가 주로 할 일은 재소자들을 감시하는 것. 감시업무이다 보니 편할 것 같지만 그저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화로워 보이던 재소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다. 교도관들은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 낌새채고 예방해야 한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고 그냥 쳐다보는 것 같지만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한다.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 죄없이 철창에 갇힌 감시자들..교도관 K씨의 하루


■2시간30분마다 30분 휴식

오전 11시30분에 K씨의 휴식시간 차례가 돌아왔다. 사동 밖으로 나오니 바람도 햇살도 안쪽과 다른 느낌이다. 이제부터 돌아가면서 30분씩 휴식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근조가 투입된다. 30분 안에 밥도 먹고 용변도 봐야 한다.

이른 점심을 '폭풍흡입'하고 나니 아랫배가 살살 신호를 보낸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화장실에 들러야 겠다. 몇 년 전부터 사동 안에 교도관용 화장실이 생겼지만 지금도 웬만하면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낮 12시. 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다음 휴식조가 나온다. 사동 밖으로 나가는 근무자와 안으로 들어가는 근무자들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된다.

사동 안으로 들어가니 재소자들의 점심식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식사시간이라고 교도관들이 긴장을 풀 순 없다. 배식을 놓고 재소자들끼리 적지 않은 신경전이 있어왔고 몇몇은 시끌벅적한 틈을 타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31xx는 아까부터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투덜대고 있다. 분명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거다.

그는 교도소 내에서 '소송전문'으로 꼽힌다. 그에게 걸리면 한동안 법원과 검찰을 들락거려야 한다. 나와 교대를 하는 J 교사는 소리를 지르는 31xx의 팔을 움켜잡았다가 '폭력 교도관'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때의 스트레스로 J교사는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그런 꼬투리를 잡지 못하면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낸다. 지난달 그는 교도소장 판공비 명세와 지난해 OO교도소에서 생산한 문서의 종류와 총 건수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결국 교도소 측은 A4용지 2상자 분량으로 자료를 요약해 넘겨줘야 했다. 교도관 4명이 꼬박 1주일 그 일에 매달렸다.

혼쭐난 교도관들은 그를 피하게 됐고, 그는 재소자들 앞에서 영웅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또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K씨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교도관은 외롭다

그렇게 2시간30분이 지나고 두 번째 휴식시간. K씨는 어느새 파김치가 됐다. 이제 다시 사동 안으로 들어가면 야근자들이 올 때까지 계속 근무를 해야 한다. 오후 5시30분부터는 야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테니 조금 수월할 테고 재소자들이 저녁식사를 시작할 무렵이면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오후 7시20분. K씨는 퇴근하면서 출근 때 반납한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전화를 켜보니 12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다. 근무 중에 전화를 못 받는다는 것을 아는 가족들의 전화는 아니다. 대부분 스팸 아니면 대출 문자.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다. 몇 번 전화를 받지 못하자 어느새 멀어져 버린 것이다.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동호회 모임을 한다거나 술 한잔을 하자며 나선다. K씨는 얼마 전부터 시작한 우슈학원에 갈 계획이다. 정신 수양에 좋다며 선배 교도관이 권했다. 교도관은 그렇게 수양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더구나 다음날 K씨는 야간근무다. 야간근무가 힘든 것은 잠자고 있는 수용자를 감시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 심지어 책도 볼 수 없다. 그저 잠든 수용자들을 쳐다보면서 밤을 새워야 한다. 편할 것 같지만 엄청난 고역이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돌아가며 3시간씩 가수면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전혀 잔 것 같지 않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 K씨는 서둘러 차를 몰아 우슈학원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어두워진 하늘 위로 교도소 담장 위 경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

정문, 재소자가 생활하는 곳으로 통하는 문이 '정문'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징역살이'가 시작된다. 휴대폰은 물론 흡연, 책 읽는 것도 금지된다. 정문 앞 인수자와 인계자의 표정이 교차한다.

감시자, 사람들은 감시하는 업무가 편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교도관은 얼굴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생각까지 바라봐야한다. 재소자들간의 팽팽한 긴장감, 싸움은 순식간에 시작된다. 별명이 '소송전문'인 '31XX번'은 재소자 사이 영웅으로 통한다. 그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법원과 검찰에서 곤욕을 치른다. 순식간에 '폭력 교도관' 딱지가 붙기도 한다.

빛과 어둠, 퇴근 후 받은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가 가득하지만 대부분 스팸이다. 연락 받을 수 없는 휴대폰에 전화 거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관계도 끊긴 지 오래다. 퇴근길 어두워진 하늘 위로 경비등이 환하다.
긴장된 시간들, 퇴근 후 평안을 찾기 위한 시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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