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 이사람]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주인공 박병철 캘리그라피스트

"글씨를 뿌려 한글꽃을 피워요."

13일 서울 안국동 '오로지' 작업실에서 만난 캘리그라피스트 박병철씨(사진)가 건넨 명함에는 이 같은 소개글이 쓰여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글씨 농부'로 불러달라고 했다.

"캘리그라피스트, 캘리그라퍼, 글씨 예술가 등 사람들이 우리 직업을 다양하게 부르고 있지만 저는 글씨 농부라는 표현이 가장 좋아요. 사람들의 마음에 '글'이라는 '씨'를 뿌려 모두가 '마음 부자'가 되는 따뜻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씨 농부' 박병철 작가는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의 글씨를 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여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글귀가 박 작가의 글꼴과 만나 바쁜 톱니바퀴 같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때렸다.

부산시청, 서울 관악구청, 우리은행의 글판과 공군회관 홍보 대형 포스터 등 시민의 큰 호응을 얻은 작품 역시 그의 손에서 나왔다.

얼마 전 첫눈이 왔을 때는 간단하지만 따뜻한 글귀를 삽화와 함께 소개하는 네이버 '쉼'에서 '지금 내리는 눈송이만큼 사랑해'라는 작품으로 누리꾼들의 마음을 적시기도 했다.

이처럼 교감에 탁월한 그의 작품은 중학교 국어·영어교과서, 서울시 초등학교 디자인교과서에도 실렸다. 이제는 각종 제품 BI(Brand Identity)와 브랜드, 광고, 달력, 출판물의 표지 등 다양한 채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날마다 배달되는 '마음 글밥'이라는 공간과 안국동 작업실 이름을 딴 오로지 홈페이지(orogi.com)를 운영하면서 작업 근황을 알리기도 한다.

이 같은 행보가 하나둘씩 모여 나중에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데, 지금까지 박 작가가 엮어낸 '자연스럽게' '마음 낙서' '내가 먼저 행복해야겠어' 등 3권의 책이 이렇게 탄생했다.

박 작가의 작품에 쓰이는 소재는 주로 '사람' '소통' '마음' '꿈' '꽃' 등 소소하지만 우리 일상을 지지하는 비타민 같은 요소들이다.

"글씨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보람 있습니다. 먹을 잘 먹은 붓으로 종이에 슥슥 글씨를 써내려가는 게 마치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 같을 때가 많아요."

한글에 대한 박 작가의 애착은 남다르다. "한글은 말하고 보고 느끼는 것을 글로 표현 할 수 있잖아요. 가령 '비'라는 글자를 얘기하면 보슬비, 이슬비, 소나기, 폭우 등 비의 형태와 소리가 다릅니다. 기분, 장소, 시간에 따라 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도 다르지요. 이것을 그 뜻과 내용에 맞게 글씨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글은 아직도 더 많은 글꼴이 있어요. 퍼내도 계속 차오릅니다.
"

그는 멋글씨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간혹 마음이라는 기본을 잊고 겉멋에만 치중하는 글씨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글씨는 쓴 사람의 손에서 제일 먼저 선택됩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은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글씨가 공해가 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