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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전문경영인체제 확산’ 명과 암

김문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20 17:29

수정 2014.10.29 15:28

‘대기업 전문경영인체제 확산’ 명과 암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대권이 사실상 예약된 재벌그룹 '황태자'들의 책임경영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오너 일가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일명 '대기업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산돼서다.

이에 일부는 오너 일가가 이사에 등재하지 않고 경영권만 행사하는 것은 "책임은 안 지고 권한만 누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전문인이 책임과 권한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면 주주 이익에 더 충실할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과도한 제재와 처벌이 낳은 부작용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3월 14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주주총회 의안으로는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 보수한도 승인만 공고됐다.

이에 따라 올해 총 9명의 삼성전자 등기이사진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는 삼성그룹 오너 일가에서 유일하게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호텔신라는 올해도 이 대표를 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라고 공고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이 삼성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3세 승계 가속화'라는 세간의 시각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등기이사 등재로 승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외부 해석이 강화되는 것은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글로벌 업체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경영권 승계라는 소모적 논쟁에 발이 묶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 책임회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정용진 부회장. 올해도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박주형 경영지원본부장을 이사로 선출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마트는 이갑수 이마트 영업 총괄부문 대표와 양춘만 이마트 경영지원 본부장을 이사로 선출하는 방안을 주총에서 다룰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최근 오너 일가들이 등기이사직 맡기를 꺼리는 것은 과도한 제재와 처벌이 낳은 부작용의 하나라고 말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로 인해 최근 등기이사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경영진이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서 "잘잘못은 가려야겠지만 지나친 구속은 기업투자나 성장전략이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 최근 오너 일가의 구속으로 성장전략에 차질을 빚은 그룹이 적잖은 게 현실이다.

한편 상법(제339조)을 보면 등기이사는 우선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해태한 때는 회사에 대해 연대해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해지면 성장전략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 특히 오너가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 그 자리를 전문경영인으로 채워 든든한 조력자를 하나 더 만들 수 있다.

■오너 일가가 책임경영하는 회사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등기이사직 유지 여부도 관심사다.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차 외에도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등 계열사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재계와 증권업계는 현대·기아차그룹이 올해도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 부회장의 과다한 등기이사직에 대해서는 논란이 예상된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상 주요 사항을 결정해야 한다. 정 부회장은 다수 이사직을 맡고 있어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 업무 수행에 충실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개발기간이 길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 특성상 오너가 주요 계열사에 대해 등기이사를 맡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은 올해도 등기이사 선임이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지주회사 중심 체제와 부문별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있고, 한진그룹 3세 경영진의 업무범위도 확대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부사장은 다음 달 21일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 이사로 추대된 상황이다. 그는 현재 대한항공.㈜한진.진에어 등 그룹 주력사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조양호 회장의 두 딸인 조현아 부사장과 조현민 전무도 사내이사로 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은 올해 주총에서 등기이사에 재선임하는 방안이 공고에 올라 있다. 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조현상 효성 산업자재PG장(부사장)이 등기이사직에 오른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가 49개 민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2013년도 지배구조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재벌 총수들은 평균 3.8개 계열사에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삼성.현대중공업.신세계.LS.대림.태광.이랜드 등 재벌은 총수가 이사로 등재한 계열사가 한 곳도 없었다.

등재이사를 총수 일가로 확대해도 삼성.신세계.이랜드.미래에셋.동부그룹은 전체 계열사 등재이사 중 총수 일가 비율이 0.3~1.4%에 그쳤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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