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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시인 박경리와 사마천의 ‘자유’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3.03 17:48

수정 2014.10.29 08:18

[fn논단] 시인 박경리와 사마천의 ‘자유’

주지하다시피 박경리는 한국문학의 거두이자 대문호이다. 전쟁이 끝나고 문단에 발을 내디딘 작가는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 하나만 붙잡고 전후의 부패한 현실을 격하게 헤쳐 나갔다. 4·19를 계기로 해 그의 소설은 가족에서 역사로 확대, 단편에서 장편으로 전신했고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의 뛰어난 역작들을 발표, 마침내 1969년부터 26년간 무려 21권의 대하소설 '토지'의 장강의 세계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토지'의 힘이 너무나 막강해 그는 늘 소설가로 일컬어져 왔지만 기실은 이미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한 어엿한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서울상업은행에 근무할 때인 1954년 6월 그는 사보에 장시 '바다와 하늘'을 발표한 바 있고 김동리의 권유에 의해 소설로 전신하기 전까지 시인을 꿈꾼 낭만주의자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박경리는 시인이다'라는 진술에 하등의 무리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그의 소설이 왜 그렇게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짙게 채색돼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차이의 하나로 이 서정적 아름다움을 들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시인인 박경리를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 박경리에 대해 시가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시에서 박경리는 생생한 자연인으로 등장한다. 그의 시는 꾸밈도 없고 기교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한참을 생각하게끔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의 시 '사마천'에서 박경리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천형(天刑) 때문에 홀로 앉아/글을 썼던 사람/육체를 거세 당하고/인생을 거세 당하고/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알다시피 사마천은 한 무제 때 '이릉의 화'를 입고 궁형을 당해 평생을 수치 속에서 살았지만 총 130여 권의 방대한 '사기'를 기록한 위대한 역사가이다.

소설가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그러한 삶은 필연적으로 허위와 위선의 현실과 맞설 수밖에 없는데 박경리는 그의 시 '유배'에서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내 조상은 역신(逆臣)이던가/끝이 없는 유배'라고 표현했다. 역신과 유배의 이미지는 사마천의 천형의 삶의 이미지와 그대로 연결된다. 그 유배의 삶에 대해 박경리는 '책상 하나 안고 살아왔다'-(유배), '글기둥 하나 잡고/내 반평생/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눈먼 말)와 같이 철저히 단절된 세계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치열한 자기 구속의 삶이야말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근원적 방식이라 할 수도 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무한대로 흘러넘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진정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제어되지 않는 욕망과 욕망의 충돌로 무분별한 충동과 불안과 두려움이 넘치는 이 사회를 자유롭다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그런 박경리가 참으로 참을 수 없어 했던 것은 "나보다 못산다 하여/나보다 잘산다 하여/나보다 잘났다 하여/나보다 못났다 하여//검이 되고 화살이 되는/그 쾌락의 눈동자"-(견딜 수 없는 것)였다. 우리 사회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질시와 모욕의 병적 쾌락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는 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검과 화살의 아수라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이 말이다.
당신이 진정 자유롭고 싶다면 당신을 지탱해 줄 그 무엇에 당신을 철저하게 묶어세우라! 먼 곳으로부터 시인이 우리에게 권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다.

김진기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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