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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정확한 시간은 기본.. ‘300억년에 1초 오차’ 시계 만들 것”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3 17:08

수정 2014.10.28 10:43

[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정확한 시간은 기본.. ‘300억년에 1초 오차’ 시계 만들 것”

【 대덕(대전)=양형욱 김혜민 기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대덕연구특구 중심부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담이 없는 연구원의 정문은 특이하게 7개의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7개 기둥은 각기 모양과 색깔, 재질 등이 달랐다. 7개의 기둥은 7개의 표준 단위를 상징한다. 왼쪽 첫 번째 기둥은 화강암으로 물질량 ㏖(몰)을 상징한다. 두 번째는 벽돌로 K(켈빈)이다. 세 번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하는 강철로, 시간 S(초)를 나타낸다.
그 옆의 콘크리트 기둥은 중량감이 있어 질량 ㎏(킬로그램)을 표현했다. 다섯 번째로 도체인 알루미늄은 전류의 상징인 A(암페어)를 상징한다. 여섯 번째 나무 기둥은 인류가 최초 측정기구로 사용했던 것이 나무 자였기 때문에 길이의 m(미터)를 의미한다. 마지막 유리 기둥은 빛이 투과하는 광도 cd(칸델라)를 상징한다.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일명 '시크릿 정원'으로 불리는 표준연 정원에는 귀한 사과나무 두 그루가 보였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과나무다. 한 그루는 미국에서, 한 그루는 영국에서 들여와 심은 사과나무다. 뉴턴의 업적과 과학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다.

표준연 1층 로비에는 눈금이 정교하게 새겨진 사각 쇠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척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와 함께 지녔던 표준자다. 지방 관리나 상인들이 도량형을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 유척의 옆에는 5개의 분동도 전시돼 있다. 이는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이 한·미 간 과학기술 협력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한 ㎏ 분동이다. 이 분동은 우리나라 ㎏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한편에는 측우기를 비롯해 단위별 전시물이 있어 "표준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11일 집무실에서 만난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사진)은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필수품이었던 유척을 항상 품고 다닌다"는 다소 엉뚱한 얘기를 꺼냈다.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치던 어사 박문수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만큼 강 원장이 '세상의 표준을 만드는 일'에 매진한다는 얘기다.

강 원장은 "표준은 공기와 같아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일상생활 속에는 다양한 측정이 존재한다"며 "일반인들은 시계가 100만분의 1 오차로 틀리더라도 피부로 못느끼지만 펜싱 신아람 선수가 '멈춰버린 1초' 때문에 금메달을 빼앗겼고, 증권사는 0.2초 차이로 주문을 잘못 내서 몇억원이 날아가 소송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표준연의 성과와 관련, "국내 순수기술로 세계 세 번째로 '광격자 시계'를 개발했다"며 "이 시계는 1억년에 1초 이하의 오차가 발생할 정도로 정확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세슘원자시계 대비 30배 우수한 이 시계는 미래 한국형 우주발사체에 탑재될 예정"이라며 "향후 300억년에 1초 이하의 오차가 발생하는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위성카메라용 초정밀 거울도 개발했다"며 "직경 2m 급 초정밀 비구면 광학거울을 개발해 아리랑 3A 위성에 장착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명함 뒷면에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따뜻한 과학기술'이란 문구를 새기고 다니는 강 원장을 만나 우리나라가 진정한 세계 최고 표준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혜안을 들어봤다.

―지난해 12월 국제도량형위원회 위원이 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제도량형위원회는 표준분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같다. 위상이 높다. 여기서 측정표준 사안을 결정한다. 이들이 모여 단위를 바꿀 수 있다. 4년마다 총회를 연다. 단위를 바꿀지 결정한다. 초창기부터 위원은 18명이다. 표준은 한번 정해지면 끝이 아니다. 더 정확한 것이 나오면 다시 세계표준으로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위원이 나온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을 위원회에서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이노텍으로부터 표준연이 감사패를 받았는데….

△두 기업이 표준연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해서 받았다. 삼성이나 LG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사업을 하고 있다. 이 분야는 오스람과 필립스가 주도하던 시장이다.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세계 최고 광측정 기술을 도입해 삼성과 LG이노텍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우리 기업의 측정표준을 외국 표준기관이 해줄 리 없다. 측정표준 기술은 곧 산업경쟁력으로 연결된다. 표준연은 세계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기업을 위해 적기에 표준을 제공해 준다. 표준기구도 제공하고 방법도 제공한다. 상용화 장비가 있다면 따로 제공한다.

―표준연의 역할은?

△산업적 측면에서 기여를 많이 하고 있다. 연구원의 역할을 '공기(air)'라고 비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일반인들은 시계가 100만분의 1 오차로 틀리더라도 피부로 못 느낀다. 그러나 정확한 시간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펜싱 신아람 선수는 멈춰 버린 1초 때문에 메달을 뺏겼다. 대학교에서 수강신청할 때 시간이 조금씩 다르면 불리해진다. 증권사가 0.2초 차이로 주문을 냈는데 몇억원이 날아가 소송이 벌어진 적도 있다. 한국표준시는 세계표준시와 100만분의 1초(1㎲) 이내로 정확히 유지하고 있다.

표준연은 시간관리를 고민 중이다. 국내 지역별 시간이 다르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장파방송을 쏴서 표준시간을 맞추는 것이 다. 앞으로 추진할 것이다.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도 시간이 동기화되지 않는다. 범인을 잡으려고 해도 시간 지도를 그리기 어려워 검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올해로 원장 3년 임기가 마무리된다. 그간의 활동과 소회는.

△시간이 빠르다. 내년은 표준연 출범 40주년이다. 1875년 프랑스에서 미터협약이 맺어진 후 1900년 초 선진국에서는 표준기관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표준연구기관의 역사보다 3배 이상 오래됐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세계 표준분야 5위권으로 올라섰다.

우리나라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 전략 중 캐치업(추격형)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취임 초기 이런 전략의 한계를 고민한 끝에 퍼스트 무버(선도형) 전략을 내세웠다. 캐치업은 빨리 가는 게 능사다. 퍼스트 무버는 빨리 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방향과 목표, 비전을 어떻게 제대로 세우는지가 핵심이다. 기관장 임기는 3년이다. 그간 자기주도형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각 센터가 미래 비전을 만들어내도록 강조했다. 단위조직 본부들이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변했다. 조직문화가 60~70% 이상 변했다. 원장이 바뀌어도 돌아갈 수 있는 조직이 됐다. 전략 정책본부를 두고 국가 사회 정책이 연구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 측면에서 컨설팅하고 있다. 휴라운지도 만들었다.

―창조경제 측면에서 표준연의 역할이 있다면.

△최근 '창업공작소'를 열었다. 예비 창업자의 시제품 제작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사실 창조경제가 나오기 이전에도 성과확산을 강조했다. 국민이건 국가건 활용했을 때 가치가 있다. 개발한 기술로 인해 측정정확도가 개선돼야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다. 표준으로만 있을 때는 재화가 된다. 창조경제와 같은 맥락이다. 표준연은 3000개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중 80%는 중소기업이다. 경제의 저성장도 문제지만 양극화가 더 문제다. 글로벌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다. 독일의 연구경험을 보면 순전히 히든챔피언이다. 그 나라의 구직 청년들은 중기에 행복하게 입사한다. 우린 젊은이들이 안 간다. 중기가 히든챔피언이 되고 젊은이들이 가고 싶은 곳이 되도록 지원하고 싶다. '99881233'란 말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9%이고 근로자 중 88%가 중소기업 근로자에 해당하며 헌법 제123조 3항에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성과학기술인 채용과 대덕연구단지 1호 어린이집을 유치하는 등 가족친화 인증기관 구현에 힘쏟고 있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 연구에 몰두했던 시기는 가정에 문제가 없었을 때였다. 많은 경우에 배우자가 직업이 없었지만 지금은 맞벌이다. 육아문제가 핵심이다. 연구 몰입환경을 저해하는 첫 번째 요인이 됐다. 표준연은 어린이집도 7시부터 9시까지 한다. 실제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연구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바깥 어린이집에 데려갈 때는 떨어질 때 아이들이 엄청나게 우는데 원내 어린이집 아이들은 부모가 바로 옆에 있다는 인식이 있어 우는 일도 드물고 떼도 덜 쓴다. 직원들이 행복한 것이 조직의 성과이고 이것이 국가에 활용된다는 측면이 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의 표준기술의 현주소와 방향을 제시한다면.

△표준연은 3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00년 역사를 가진 선진 표준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측정표준의 국제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비교에서 세계 5∼6위권 수준을 달성했다. 국제비교 참여 건수는 372건으로 세계 6위다. 국제비교 주관 건수는 62건으로 세계 5위다. 진정한 표준 선진국으로 우뚝 서려면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 해서는 세계 1등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에 집중해 세계 최고를 이뤄야 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조선 등 우리나라가 1등인 산업분야와 관련된 측정표준 기술을 확립해 산업계에 보급한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를 통해 2025년 세계 1등 표준기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정확한 시간은 기본.. ‘300억년에 1초 오차’ 시계 만들 것”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1975년 설립된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은 헌법이 보장(제127조 제2항)하는 국가측정 표준 대표기관이며 대덕연구단지 1호 입주기관이기도 하다. 표준연은 지난 2005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담을 허물고 화강석.벽돌.금속 등 7가지의 각기 다른 건축재료로 7개의 기둥을 세웠다. 주요 연구 대상인 길이.질량.시간 등 물리에 관련된 7가지 기본 단위를 상징하는 기둥은 연구원의 본질을 오롯이 담아내 건축가들로부터 '명품'찬사를 받기도 했다.

표준연은 물리 기본 단위의 표준뿐 아니라 식품, 환경, 보건 등 196개 분야의 표준을 유지·보급하고있다. 표준 측정기술은 공기 같아서 의식할 수는 없지만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지난해 여름 일본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우려로 전국의 많은 교육청이 엉뚱한 기기로 방사능을 측정하고 '안전'하다고 발표해 국민을 기만한 해프닝이 있었다. 표준연은 식품용이 아닌 대기용 측정기로 엉터리 조사가 이뤄진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머리카락의 굵기를 30㎝자로 측정하는 오류를 바로잡는 것도 표준연의 역할이다.

표준연의 대표적 성과는 세계 여섯 번째로 개발한 30만년에 1초의 오차를 가지는 1차 주파수 표준기 'KRISS-1', 국내 최대 규모의 우주용 2m급 광학거울 개발 등이 있다.

또 '촉각센서를 응용한 초소형 마우스 및 터치스크린 기술'은 이동통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이후 출연기관 최고의 기술 이전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국가별 측정표준기관의 경쟁력은 독일.영국.미국.프랑스.일본에 이어 세계 6위다.

특히 자동차 배출가스 분석, 천연가스 측정, 전기장 강도측정 등은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bbrex@fnnews.com 김혜민 기자

■약력 △57세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학사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석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 박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선임본부장·물리표준부장·표준보급부장 △교과부 지정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 본부장 △국제측정연합(IMEKO) 회장 △한국계량측정협회 회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 △미래대전기획위원회 자문위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미래창조과학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위원 △대덕특구 창조경제 전진기지 조성 기획위원회 위원장 △국제도량형위원회(CIPM)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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