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국내외 경제가 요동칠 때는 너나없이 중앙은행을 바라보게 된다. 경기에 대한 중앙은행의 판단과 대응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한국은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13개월째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금통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것만이 경기대응책은 아니다. 금리 동결도 상황에 따라선 적절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은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응이 금리동결로 나타난 것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 침체와 투자 부진이 심화되고 '불황형 흑자'가 커지면서 원화절상이 가팔라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성장세 둔화도 두드러져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등이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런 경제상황 변화에 대해 앵무새처럼 "6월 지표를 보고 판단하겠다"를 반복했다. 신중함인지 안이함인지 알 수가 없다.
금통위가 본회의 직후 발표한 '6월 통화정책 방향'을 보니 의문이 더 커졌다. 그 내용은 극히 도식적이고 모호하기만 하다. '세계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나 미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 변화, 일부 신흥시장국의 성장세 약화 등에 영향받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앞으로 해외 위험요인에 유의하고 세월호 사고 이후 내수 움직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성장세 회복이 지속되도록 지원하는 가운데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등등. 경제 상황 분석은 두 달 전인 4월 발표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정책방향 부분도 '세월호 사고'만 추가됐을 뿐 달라진 게 없다.
두 달 사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견해가 전혀 없다. 그러니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방향성도 당연히 알 수 없다.
한은이 당장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 총재는 지난달에 "경기 흐름을 전제한다면 금리 방향은 인상 쪽"이라고 '인상 깜빡이'를 켰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데다 1·4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이 3.9%로 높게 나타났으니 매우 상식적인 판단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순진하고 성급한 발언이었다. 내수 및 투자 부진과 원화절상이 가시화되고 세계경제 둔화가 뚜렷해지니 금리 인하 압박이 오히려 커졌다. 이 총재도 최근 "할 수 있는 수단(금리 대응)을 항상 준비해두고 있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좌회전(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동결 또는 인하)한다? '동결 총재' '불통 총재'라는 비판을 받았던 전임 김중수 총재가 떠오르지 않는가. 이 총재는 취임사에서 "통화정책 운영체계가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과 성장 또한 조화롭게 추구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고 싶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많이 변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금융 안정이라는 고유의 목적보다는 경제회생에 올인하고 있다. 미국·일본은 돈 풀기(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총재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놓았다. 물가가 19개월째 1%대를 기록해 관리목표치(연 2.5~3.5%)를 한참 벗어나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마냥 물가안정에만 힘쓰는 것이 과연 옳은가.
최경환 경제팀 출범을 앞두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한은 간의 정책공조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경제흐름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반응했다. 금리조정 등 내 업무영역은 건드리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한은이 경기대응에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이런 소리가 나올 까닭이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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