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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첨단 연구장비 186종 활용 민간연구 지원”

김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3 16:27

수정 2014.10.25 06:50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튼튼하게 성장하려면 인프라 구축과 함께 우수인력 육성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튼튼하게 성장하려면 인프라 구축과 함께 우수인력 육성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튼튼한 골대와 훌륭한 축구공만으로 승리할 수 없듯이 세계 최고 기초과학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해외 유치 여성 과학자 1호'를 시작으로 진공학회장·여성과학기술인회장 등을 거쳐 여성 최초로 표준연구원의 수장 자리에 올라 과학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온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원장의 일성이다. 지난해 취임한 정광화 원장은 서울뿐 아니라 오창분원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센터들과 유관기관을 방문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갖춘 연구 여건이 20년 전과 정말 많이 달라졌으며 높은 수준의 지원을 요구한다는 것을 체감했다"며 이를 계기로 예전처럼 지역 연구자들을 다 지원해줄 수 있는 범용성 지원이 아닌 '특화'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개소한 이화여자대학교 서부센터는 '정 원장표 지역센터 1호'인 셈이다. 정 원장은 "서부센터는 나노·바이오·약학(NBPT·Nano, Bio, Pharmaceutical Technology)의 융복합을 목표로 기획됐으며 이 연구에 적합한 사람들을 모아 연구 시너지를 내는 성공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센터 활성화·특성화를 위해 과감한 합병도 고려하고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근 과학계에서 강조되는 융합연구와 관련, "단어가 주는 무게에 압도당하는 것 같다"며 조금은 가볍게 접근해볼 것을 제안했다. "NaCl 소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트륨, 염소 원자가 녹아 합쳐지는 게 아니라 그저 전자 하나를 공유할 뿐"이라며 매우 작은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에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소금이라는 전혀 새로운 물질이 창조된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연구원들의 개성과 연구방향을 유지하면서 다른 부서와 한 가지만 공유해도 충분히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개인 리더십을 극대화하는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향후 10년, 20년 미래의 초석을 다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정 원장을 지난 11일 집무실에서 만나 과학기술의 현안과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첨단 연구장비를 활용해 기초과학 연구 진흥 및 발전을 위해 연구지원 및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연구를 하는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우선 과학자일 것이다. 과학자 다음으로 필요로 하는 요소가 바로 연구장비다. 그런데 많은 비용이 투자돼야 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장비를 모든 과학자에게 각각 지원해 주기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연구원이 장비를 구축해 두고 대학이나 연구기관, 기업체 연구원들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이렇게 설명하다보니 마치 연구장비를 빌려주는 기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연구장비가 가전제품 같지 않다는 점이다. 박사급 전문인력 정도여야 다룰 수 있는 장비들이 대부분이며, 동일한 장비여도 어떤 전문가가 장비를 다뤘느냐에 따라 연구결과값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형 첨단 장비를 구축할 뿐 아니라 연구장비를 자체 개발하는 것도 연구원의 주요 과제다. 2007년 세계 최고성능의 질량분석기인 15 T FT-ICR MS를 개발했으며 2008년에는 펨토초 다차원 분광기를 개발했다. 이 장비는 생체 분자 동역학 및 나노 재료 분광 분석을 위한 초고속 다차원 분광기로서, 생체 분자 및 재료 관련 다차원 분광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지난 2009년에는 펨토초 다차원분광기를 통해 1조분의 1초의 짧은 시간 단위에서 광학이성질체의 구조 변화를 규명함으로써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성과와 올해 중점 추진 과제는.

▲우리 연구원의 임무는 '국가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이 되는 기초연구 진흥을 위한 연구지원 및 공동연구 수행'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첨단대형연구장비를 구축·운영해 왔고 대학, 연구기관, 기업체에 대한 연구지원과 공동연구를 수행해 왔다. 지난해의 성과만을 본다면 약 180종의 분석장비를 활용해 연간 13만개의 시료를 분석했으며, 최고 수준의 지원을 위해 새로운 분석법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1200편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공동연구를 통해 네이처(자매지 포함)지에 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시료 각 부분의 온도차이를 이용해 분석이 이뤄지는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을 개발했고, 이 기술의 스핀오프를 통해 반도체불량분석장비 개발을 위한 기술이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밖에 대형 사업으로는 '국가분자이미징센터' '국가고자기장센터' 구축을 위한 기획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가분자이미징센터' 사업은 약 2863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창조경제 측면에서 연구원의 역할은.

▲창조경제와 관련해 우리 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분석지원 서비스 중 중소기업에 대한 비중을 확대하고, 기업체가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원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분석장비와 관련된 기술을 활용해 중소기업과 각종 분석장비를 직접 개발함으로써 기술의 사업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분석지원 서비스의 경우 우리 연구원은 이미 상당부분 기업체에 대한 서비스를 수행해 왔다. 연간 약 13만개의 시료를 분석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중 약 24%가 기업체를 위한 서비스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창조경제에 발맞춰 중소기업 지원체제를 강화했으며, 대표적으로 22개 중소기업을 파트너기업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기술상담, 중소기업에 대한 분석지원 이용료 할인(최대 40%), 5개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멘토링, 10개 중소기업과의 중소기업 융복합기술 개발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중소기업과 손잡고 분석장비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을 강화하는 열린공동연구실 사업, 중소기업을 포함한 분석장비 유지보수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유치과학기술자·출연연 기관장 '여성 1호'로서 후배 여성 과학도들의 롤모델이 됐다.

▲1978년 표준연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당연히 여성 과학자에 대한 롤모델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이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지만, 과거보다는 여성 과학기술인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 것도 사실이다. 여성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성별에 구분 없이 '훌륭한 과학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속한 조직 및 사회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 특유의 감성과 배려로, 또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 및 사회에서 인맥을 구축하며 기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기초과학기술계의 현안은 무엇인가.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주소라고 한다면 향후 50년, 100년 후의 미래를 좌우할 갈림길에 서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계는 경제적으로 고도의 압축성장이 이뤄지는 시기에 선진국을 따라잡는 추격형 연구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국도 시도하지 못하는 분야의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선도형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선도형 연구가 구호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융합연구 추세가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울러 이공계 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탄탄하게 이뤄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학이나 물리는 머리 좋은 사람만 한다고 오해하지만 수학·과학은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90분 축구경기를 뛰기 위해 선수들은 달리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잔디밭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 골프선수가 무덤에서 스윙 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 현재 우리의 삶은 스마트폰 등 정보과학기술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공계를 이해 못하면 동떨어질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다. 분야를 통틀어 이공계 지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갖추고 있는 기초연구와 관련한 인프라 역량의 수준은.

▲현재 우리 연구원의 비전은 '세계 일류의 열린 기초연구 인프라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면 현재는 이런 수준에 도달한 상태는 아니다. 우선 과학기술 인프라를 정의한다면 연구인력, 연구시설·장비, 연구비, 연구자의 신규·재교육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 연구원이 규정하고 있는 기초연구 인프라는 연구시설·장비와 이를 운용하는 연구인력 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세계 1위 수준이다. 이 중 기초연구에 투자되는 비중은 약 18%로, 선진국과 비교해 투자규모가 적지는 않다. 좁은 의미의 인프라인 연구시설·장비 부문만을 본다면 2005년 이후 정부연구개발예산으로 구축돼 국가연구시설장비관리서비스에 등록된 장비 현황을 살펴볼 때 약 6조1743억원이 연구시설·장비에 투자된 셈이다.
다만, 연구시설·장비 투자비 가운데 약 60%가 외산장비 도입에 사용됐다는 측면에서는 새로운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추격형 연구가 아닌 선도형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도 시도하지 못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이에 새로운 연구주제에 맞는 새로운 연구시설·장비를 직접 개발하는 것도 기초지원연구원의 과제다.

bbrex@fnnews.com 김혜민 기자

■약력 △66세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물리학 박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4대 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1·2대 역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대덕특구위원회 위원(현) △한국원자력의학원이사회 이사 △원자력위원회 위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책학부 운영위원회 위원(현) △아시아태평양측정표준협력기구(APMP) 의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10대 원장(현)

■수상 △1988년 과학기술처 우수연구원 연구개발상 △2000년 국민훈장 목련장 △2003년 여성부 베스트 멘토링상 △2004년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2008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2009년 비추미여성대상 별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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