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내게 가장 행복한 ‘지상의 양식’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17 16:56

수정 2014.10.25 02:32

[fn논단] 내게 가장 행복한 ‘지상의 양식’은

고향 마을의 여름 밤공기는 상쾌하고 시원했다.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에게 밤공기는 달콤한 휴식과 안온한 평화를 줬다. 마을 뒤 언덕에 있던 모정(茅亭)에 마을 사람들이 초저녁부터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마을 밖 세상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1960년대 당시 시골 아이들에게 마을 밖 세상은 미지의 세계였다.

눈이 하나인 거인이 사는 세상일 수도 있고, 손톱이 긴 마귀할멈이 사는 세상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정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시절 모정에서 잠들어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지금은 아련한 한여름 밤의 꿈이다.

우리 집은 할머니를 모시고 3대가 살았다. 마당이 넓었고 여름이면 마당 한쪽에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다. 할머니는 팥칼국수(낭해)를 특히 좋아했다. 아버지는 밭에 밀을 경작했다. 탈곡한 밀을 메고 고개를 두 개나 넘어 방앗간에 가서 밀가루로 빻아 오는 일은 세 살 위의 형과 나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가 빻아온 밀가루가 순백의 색깔을 띠지 않는 것이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옆집에서는 읍내에서 밀가루를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 집 밀가루는 눈처럼 희었다. 그런데 우리 집 밀가루는 약간은 누런 색깔을 띠어 방앗간 기계에 뭔가 잘못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야 시장에서 파는 밀가루가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고 당시 우리 집에서 먹던 밀가루야말로 지금 말로 하면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밀가루였던 것을 알게 됐다.

밀가루 반죽을 다듬이로 둥글고 얇게 펴는 일로 형과 나는 자주 겨루기를 했다. 누가 밀가루 반죽을 예쁘고 얇게 펴는가를 할머니가 판정해 줬고, 그때의 할머니의 칭찬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할머니와 누님은 팥을 미리 삶아뒀다가 칼국수를 조리해 낭해를 만들어 왔다. 낭해는 최고의 별미였다. 마당 한가운데 평상 위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낭해를 먹던 추억은 지금도 너무나 달콤하다. 간혹 이웃들을 초대해 낭해를 나눠 먹곤 했는데 음식을 나눠 먹던 인정이 사뭇 그립다. 그 여름날의 낭해는 내 생애 최고의 양식이었고 내가 지상에서 맛봤던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제 내가 가장이 됐다. 가급적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아내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 같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꿔 음식을 만들어 먹던 시절과는 달라 슈퍼마켓에 들러 식재료를 사 와야 하는 번거로움과 조리 과정의 복잡함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을 꺼리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먼 장래에 어떤 음식을 '지상의 양식'으로 기억할까. 나는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에서는 식탁선교(Table Mission)라고 해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여름에는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 행복한 '지상의 양식'을 나눠 먹고 자식들에게 추억을 주고 싶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