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30여년 전 1980년대 중반 겨울에 저는 중부전선의 어느 부대에서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장교훈련과 적응훈련(OJT)을 내 나름대로 충분히 받고 부대 배속을 받았지만 병영문화는 여전히 낯설고 저는 그곳에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대에 사고가 생겼습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위관 장교들이 단본부에 출장을 나왔다가 밤에 술을 마시고 민간인과 충돌을 빚게 된 것입니다. 주민의 신고를 받은 헌병이 출동해 말렸는데 술에 취한 장교들이 출동한 헌병들을 폭행하는 사고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 사건이 군부대 내에서 병과 간 힘겨루기로 번진 것입니다. 당시 부대의 검찰관이었던 제가 중립적 입장에서 그 사건을 수사하게 됐습니다. 당시 장교들을 수사하면서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추위에 얼어 터진 뭉툭한 손을 보게 됐습니다. 거친 복무환경과 열악한 시설이 바로 상상이 됐습니다. 따뜻한 난로가 있는 사무실에서 타자를 치고 있는 저의 하얀 손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 사건은 상당한 수사를 거쳐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비행행위를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초급장교들에게 징계 처분이란 상당한 불이익입니다. 그 장교들은 그 후 군 생활을 하면서 그 징계 처분으로 인해 진급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 군 생활을 하면서 미군 법무관들과 자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군 법무관은 상당수가 전투병과에서 근무하다가 군에서 로스쿨에 위탁교육을 해 군법무관으로 양성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 미군 법무관은 비행기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전투기 후방석에 앉아 급상승과 급강하 비행을 경험했고, 그런 과정에서 몇 번 졸도했다는 경험담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만큼 생생한 군 생활 체험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당시의 장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사와 징계 처분의 실무를 담당하던 저는 그 장교들보다 훨씬 군 생활 경험과 군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장교들이 제가 했던 징계 처분을 심정적으로 승복했을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군인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대비해 훈련하고 조직을 정비합니다. 상당히 폐쇄적인 생활을 장기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입니다. 흥분하기 쉽고 폭발하기 쉬운 심리적 성장기를 겪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혹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군 수사와 군 재판은 군 문화와 군인들의 복무 상황을 이해해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그런 경험과 이해 없이 너무 쉽게 군 수사와 군 재판제도 변경이 거론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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