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거위털 증세' 논란을 보며

용환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1 15:20

수정 2014.09.21 15:20

출처 : FN뉴스
출처 : FN뉴스

#. 국가가 모든 의료비용을 감당하다 보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딱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병원에 몰려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일반국민과 환자, 의사 모두가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당국이 짜낸 묘안이 병원에 한번 갈 때마다 1달러 정도의 적은 돈을 내게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병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었고, 진짜로 아픈 사람들은 싼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는 등 의료현장은 점차 정상을 되찾았다, 바뀐 점은 무임승차(free ride)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의료정책에 얽힌 이야기다.


인간의 합리적인 행동이 실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무임승차론'의 예를 꺼내 든 것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으로 2조8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기로 한 데 이어 안전행정부가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을 통해 1조4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여기에 주세(酒稅) 인상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이 타깃이 돼 논란이 됐던 소득공제→세액공제 전환도 사실상 1조원짜리 증세였던 셈이다.

정부가 증세에 나서는 까닭은 누적되는 세수결손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복지재원은 늘어났는데 경기침체로 세금은 덜 걷히고 있다. 기초연금 지급, 4대 중증질환 국고지원 등 박근혜정부의 복지공약은 이미 상당한 재정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세청이 곳곳에서 세금 거두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이것만으로 재원을 충당하기란 역부족이다. 증세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정부의 자세다. 국민 모두가 증세라고 믿고 있는데 정부만 국민저항을 우려해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래서 '우회증세' '거위털 뽑기 증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세수확충을 위해 간접세에 집중하다 보니 서민 주머니를 털어 빈 곳간을 메우려 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소득과 상관없이 세금이 오름에 따라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조세부담이 더 커지는 '역진성'과 조세형평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증세는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이미 깨졌다. 국민과 시장은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현실을 당당히 인정하고 가야 한다. "증세는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계속 내는 청와대 앞에서 정책담당자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43세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고착화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상위 1% 이상 소득상위자에 대해 80%를 과세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각국 정부가 최고 10%에 달하는 글로벌 누진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세개혁을 통한 소득재분배를 주창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다. 증세와 조세개혁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는 게 신뢰를 공고히 하는 첩경이다. 복지가 필요하다면 복지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표가 무서워서 '증세를 증세라 부르지 못하면' 홍길동 같은 의적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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