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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공시 조항 빼자" 단통법 시행 전부터 무력화 위기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3 10:55

수정 2014.09.23 18:05

오는 10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 개선법(단통법)이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단통법의 핵심은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의 휴대폰 보조금 규모를 미리 확인하고, 이를 요금할인이나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인데 이를 보장하는 '분리공시' 조항이 삭제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23일 정부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단통법의 고시 조항 가운데 휴대폰 보조금을 구성하는 이동통신 회사 보조금과 제조업체 장려금을 분리해 소비자에게 공시하도록 하는 조항이 24일 열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삭제될 우려가 높다. 규개위는 24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단통법의 분리공시 제도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계획이다.

규개위는 분리공시제도를 도입하면 단말기 제조회사의 마케팅 비용이 공개돼 글로벌 마케팅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분리공시 제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규개위가 국내 휴대폰 사용자들의 알 권리와 단말기 값 인하 요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 휴대폰 제조회사들의 글로벌 마케팅만 걱정해 소비자들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분리공시는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가 스스로 자신의 보조금 금액을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항이다. 휴대폰 보조금은 크게 △이동통신 회사의 보조금 △단말기 제조업체의 장려금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이동통신 회사의 보조금은 휴대폰 값으로 지원받지 않고 요금할인으로 바꿀 수 있다.

소비자가 자신이 받게 될 전체 보조금 가운데 요금할인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사전 공시를 통해 계산한 뒤 요금할인과 휴대폰 보조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분리공시 제도다.

예를 들어 한달 5만원 요금제를 2년 약정으로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이동통신 회사가 2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여기 100만원짜리 신형 휴대폰을 구입하면 제조회사가 7만원을 장려금으로 지급할 경우, 이 내역을 소비자에게 분리해서 알려주면 소비자는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을 온라인으로 구입한 뒤 이동통신 회사 보조금 20만원은 요금으로 할인받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분리공시 조항이 삭제되면 소비자는 보조금 27만원(20만원+7만원)의 내역을 일일이 알 수 없어 사실상 지금까지처럼 대리점의 말만 믿고 비싼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면서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늘어난다.

결국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과도한 불법 보조금 경쟁을 막아 국내 휴대폰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결과적으로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정부 의지가 분리공시 조항 삭제로 사실상 무력화될 위기에 놓인 셈이다.

이 때문에 단통법의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일제히 분리공시 제도가 단통법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또 23일 국회에서 열린 '단통법 의의와 가계통신비 절감 과제' 토론회에서도 "분리공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각계 의견이 모아졌다.
최원식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새정치민주연합)은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은 부당한 이용자 차별과 단말기 구입부담 등 문제가 많다"며 "단통법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분리공시제가 포함된)고시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은 "방통위는 지난달 전체회의를 거쳐 단통법에 분리공시 조항을 넣기로 결정한 후 규제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며 "삼성을 제외한 절대 다수가 분리공시제를 지지하고 있는 데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 분리공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녹색소비자연대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양대 주체인 이통사와 제조사가 보조금의 구조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 현행 영업형태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이동통신서비스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보조금 분리공시'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규개위의 미온적인 태도로 최종 결정이 지연되고 있어 10월 1일 단통법 시행 시 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지적했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양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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