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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교육의 빈부 격차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9.26 16:49

수정 2014.09.26 17:22

[월드리포트] 교육의 빈부 격차


뉴욕 맨해튼의 유명 지역인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쿠퍼 유니온'이라는 대학이 있다.

이 대학은 예술과 건축, 그리고 공학 분야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학생도 1000여 명에 불과한 '소수 정예' 명문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건축학은 세계 최고 프로그램으로 꼽힐 만큼 유명하다.

물론 학문도 인정받는 곳이지만 쿠퍼 유니온 대학의 특징은 등록금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859년 사업가 피터 쿠퍼의 유산으로 개교한 쿠퍼 유니온은 가난한 노동자들도 최고 수준의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쿠퍼의 신념으로 세워진 학교로 학생들로부터 등록금을 받지 않았다. 미국에서 대부분 사립대학의 1년치 학비가 4만달러(약 4200만원)를 훌쩍 넘기는 사실을 감안할 때 쿠퍼 유니온의 이와 같은 교육 신념은 당연히 극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처럼 무상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쿠퍼 유니온도 결국 재정난으로 인해 무상교육을 포기했다. 대학 측은 올 가을학기부터 수업료 2만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3년에 태어난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4만5000달러(약 2억5600만원)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액수는 미 국민 중 '중산층'을 기준으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부유한 가정의 자녀 양육비는 가난한 가정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세금을 내기 전 연소득이 10만6540달러(약 1억855만원) 이상인 가정은 자녀 양육에 18년간 무려 40만7820달러(약 4억1500만원)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그 어느 민족보다 강한 미국 내 한인들의 경우,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도 자녀들에 대한 양육비만큼은 '부자'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짐작된다.

놀라운 것은 한국 역시 자녀 양육비가 미국만큼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녀 1인당 대학졸업까지 22년간 들어가는 양육비용은 총 3억896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모의 '자녀 양육 책임'을 고등학교 졸업 시기인 18세까지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약 절반(49.6%)이 "자녀 양육의 책임을 대학졸업까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당수 학부모들은 미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들이 가장 경고하고 우려하는 '이산가족 만들기'도 마다하지 않고 미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스템이 다르다고 해도 교육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근 대한민국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영·유아들의 문화예술 체험에 있어서도 가구 소득에 따른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가구는 어린이미술관을 이용한 경우가 1.7%에 불과한 데 반해 400만원 이상 가구는 10%에 달했다. 어린이도서관과 어린이박물관, 문예회관 등도 200만원 미만 가구보다 400만원 이상 가구의 이용률이 3배 이상 높았다.


미국 농무부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차이는 교육비에서 나온다"며 "부유한 가정은 자녀들에게 더 많은 컴퓨터와 비디오게임, 스포츠 장비를 사주고 개인 음악교습을 시키는 반면, 저소득 가정은 아이들을 집에 두거나 마당이나 공원에 나가 놀게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빈부격차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쿠퍼 유니온의 사례를 보면서 느낄 수 있지만 '돈 없이 열정만 갖고 공부가 가능한 시대가 앞으로 과연 얼마나 더 갈까'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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