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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사이버 망명과 디지털 증거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0 11:14

수정 2014.10.10 17:18

[여의도에서] 사이버 망명과 디지털 증거

포털사이트의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정도가 심한 명예훼손 사건을 고소나 고발 없이 인지수사하겠다는 수사기관의 발표 이후 '수사기관이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24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되면서 네티즌이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하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검열 논란이 일면서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점유율이 93%에 달하는 카카오톡 이용자 수가 크게 줄고 있다. 지난주 카카오톡 이용자 수는 2600여만명으로 전주 대비 40만명가량 감소한 반면 독일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 국내 이용자는 150만명으로 늘었다. 일주일 전보다 무려 50만명 이상 늘어난 수치다. 텔레그램은 수사기관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신설하고 "인터넷 공간 내 허위사실 유포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이후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일자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 사이버 망명지로 떠오른 모바일 메신저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브콘닥테'를 설립한 파벨 두로프가 만든 비영리 메신저로 대화내용이 암호화되는 등 보안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텔레그램'은 발 빠르게 공식 한글 버전을 내놓았다.

네티즌의 동요에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톡 서버의 대화 저장기간을 2~3일로 줄이고 개인정보보호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동요하는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현재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네티즌의 동요가 계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그동안 일군 국내 정보기술(IT)의 해외 경쟁력까지 피해를 볼 지경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정보화 사회로 전환돼가면서 삶의 모습도 아날로그 중심의 삶에서 디지털 중심의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이 디지털화하면서 이 같은 경향은 형사절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법정에서 사용되는 증거의 모습이 아날로그식 증거에서 디지털식 증거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디지털 정보처리시스템들이 우리 일상생활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면서 이제 수사기관의 디지털 증거 확보는 모든 형사사건의 성패를 좌우하는 필수조건이 됐다.

하지만 '사이버 망명'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심을 돌리기 위해선 수사기관이 관련 사건과 상관없는 전자정보를 증거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형사소송법상의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수사기관이 정보저장매체 원본을 압수하든 전자정보 복제물이나 출력물을 압수하든 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부분에 한해 압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문서로 출력하든 파일을 복사하든 모두 혐의사실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돼야만 하고 만약 사건과 아무런 관련 없이 저장된 전자정보 중 수사기관이 임의로 문서출력하거나 파일을 복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영장주의에 반하는 위법한 영장집행으로 볼 수 있다. 위법한 영장집행 결과로 취득한 증거물은 위법수집증거능력 배제법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배척해야 한다.

또 전자정보의 복제물 또는 출력물 중에서 사건과 관련 없는 부분은 폐기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일 폐기했다면 폐기한 사실을 압수를 당한 사람 등에게 통지한 뒤 문서로 남기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증거의 수요는 앞으로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증거가 점차 형사소송절차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 법률이나 형사소송의 주체들이 여전히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디지털 증거와 관련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처럼 디지털 증거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형사절차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이버 망명을 했던 네티즌의 민심을 되돌리지 못했다는 결과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정보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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