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디지털에 갇힌 사람들] (2) 디지털 감시시대, 사생활 있다 없다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5 17:34

수정 2014.10.15 22:38

#. 여성 직장인 A씨(32).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지만 손은 여전히 휴대폰에 있다. 앉아서도 수시로 오는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등으로 얘기를 주고받느라 정작 바로 앞에 있는 반가운 친구와는 정신없는 대화를 나눴다.

#.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비서관 B씨(34). 최근 논란이 되는 감청 관련 국감 자료를 검토하던 중 유선전화를 이용한 도청보다 인터넷을 통한 감청 비중이 커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메신저 사용 시 걱정부터 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디지털 대화의 주요 수단이 모바일을 통한 문자 소통이 되면서 또 하나의 '디지털 감옥'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수사당국의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사이버 검열 논란이 가열되면서 사생활 없는 '디지털 감시'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흐름이다.

'사이버 망명'이란 단어가 일상화되는 등 모바일에서의 디지털 대화가 우리 생활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으면서 사이버 검열에 따른 후폭풍을 잠재울 대책이 절실해지고있다.
이에 따라 수사당국의 편리성이나 일반 시민의 사생활 보호 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민주주의 사회에 맞는 요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 불안감에 떠는 사회

15일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제출받은 서비스별 통신제한조치(감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당국의 인터넷 등에 대한 영장·요청서 등 문서를 통한 감청건수는 401건으로 전년 대비 51.32% 이상 증가했다.

반면 유선전화를 통한 감청조치 건수는 지난 2008년 506건에서 지난해에는 191건으로 급감했다.

전반적으로 수사당국의 감청조치가 감소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e메일, 인터넷 비공개 게시판 등을 통해 사실상 '검열'은 다시 늘어난 셈이다.

수사당국 외에도 기업에서의 디지털 감청 사례는 다수 등장한다. 회사 노조감시 외 불법 감청장비가 다수 깔려 있다.

국내 한 대형통신사는 해고직원의 휴대폰 통화내용과 위치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입수해 활용했다. 검찰은 '고의성이 없었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다행히 아직 국내에서 인터넷에서의 실시간 검열은 활성화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시간 패킷감청설비 의무화가 도입되지 않아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감청설비를 보유하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시민의 불안감은 높아져가고 있다.

이번 카카오톡 등에 대해 제기된 감청 논란은 당국의 압수수색을 통해 제공된 제3자의 개인정보와 대화내용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통신사들에 압수수색 영장이 들어와도 회사들은 자신들의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무조건 자료를 다 내놓지는 않는다"며 "여러 정황에서 시민에게 정보 유출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줘 근거 없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디지털상에 자의적으로 노출되는 개인 사생활 외에도 타의적으로 노출되는 사생활에 대한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폐쇄회로TV(CCTV)가 활성화되면서 사생활 침해 범위가 넓어진 데다 검찰과 경찰 등의 공권력 개입이 활발해진 디지털 세상으로 확산될 경우 인권침해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에서 이뤄진 표현물에 대한 '검열'은 개인적인 것이 담겨있는 만큼 공권력과 접촉한 흔적이 있다면 언제든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7조가 주요 근거로 제시되면서 국가 공권력의 수사가 불특정 다수의 사생활을 건드리지 않는지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법무법인 제율의 김성훈 변호사는 "민주주의가 되려면 국민 모두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해야 하는데 공권력의 검열은 자기검열 빈도를 높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게 된다"며 "인터넷에서의 검열로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위법으로 공정한 법 집행도 필요하겠지만 사회 자정기능으로 정화해야지 공권력은 투입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범죄에 대한 감시 절차와 과정을 정하듯 사이버 사회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사회적 합의 과정을 먼저 거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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