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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악법'과 '호법' 기로에 선 단통법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5 17:43

수정 2014.10.15 17:44

[차장칼럼] '악법'과 '호법' 기로에 선 단통법

이통 소비자는 휴대폰 보조금이 너무 적다고 아우성이다. 이통 대리점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도 시장 냉각에 울상을 짓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들이 가계통신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정부를 다그쳤다. 이래저래 죽을 맛인 건 정부다.

온통 수혜자는 없고 피해자만 가득한 형국이다.
극심한 혼돈 상황이다. 이는 지난 1일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후 벌어진 10월 이통시장의 민낯이다. 그 원인이 뭘까. 단통법 시행 첫날 이통 3사가 보조금을 상한액(30만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게 공시하면서 촉발됐다. 95만원짜리 최신 휴대폰(갤럭시노트 4)에 대한 보조금이 11만원에 불과했다. 휴대폰 출고가 인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기름에 불 붙듯 이통 소비자들의 불만 여론이 타올랐다. 순식간에 단통법은 '악법'으로 전락했고 정부는 '악당'으로 전락했다.

결국 이통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여파는 2만5000여개 이통 유통점에 직격탄이 되어 날아갔다. 이들은 거리로 나가 정부를 향해 '단통법 폐지'를 외쳤다.

휴대폰 제조사도 단통법 시행 후 실적 부진으로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 속 외산 저가폰의 공세로 위기를 맞은 휴대폰 제조사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보조금 지급 주체인 이통사도 번호이동 실적이 급감한 데다 성난 소비자의 원성에 가시방석이다. 결국 단통법이 박근혜정부 초기 약속한 '가계통신비 경감' 실현은커녕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법'이란 여론이 확산됐다.

과연 그게 100% 맞는 것일까. 혹시 단통법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마저 성급히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간 건 아닌지 신중하게 따져볼 일이다.

일단 단통법 시행 후 긍정적인 변화는 30년 역사의 이통시장에서 불법 보조금이 사라진 점이다. 최소한 단통법의 목표 중 하나인 시장안정을 이뤘다. '호갱'을 양산해온 보조금 역차별도 사실상 사라졌다.

"단통법 시행 후 휴대폰 보조금이 반토막 났다"는 주장도 따져보면 모순이 있다. 단통법 이후 휴대폰 보조금은 이통시장이 과열된 시기에 소수에게 지급되던 불법 보조금에 비해 반토막 난 게 맞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 이통시장이 안정화된 시점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없다. 소비자의 기대치가 과열시기 소수에게 지급된 비정상적인 보조금에 맞춰져 있는 데서 초래된 '착시현상'인 셈이다.

오히려 단통법 시행 후 소비자의 혜택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 휴대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목이 그렇다. 단통법상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12%) 혜택을 선택할 수 있다. 요금할인 혜택은 통상 보조금에 비해 2∼3배 이상 유리하다. 이는 단통법 시행 후 장롱에 방치됐던 중고폰·구형폰을 선호하는 현상을 이끌어냈다. 전 세계 최단기(15.6개월)를 자랑하던 우리나라 휴대폰 교체주기도 대폭 늘어나게 됐다.
이는 궁극적으로 가계통신비 경감 요인 중 하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단통법의 실효성을 정확히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제 단통법을 태어나자마자 '악법'로 낙인 찍어 사장시키는 게 좋을지 아니면 보완작업을 통해 '호법'으로 키우는 게 유리할지에 대한 판단은 5600만 이통 소비자의 몫이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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