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시장이 서서히 월세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시장 한쪽에서는 전세제도를 붙들려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세제도를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입장이 상충되고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줄다리기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파이낸셜뉴스는 전세제도가 각계각층에서 이해관계가 왜 충돌하는지, 해외에서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앞으로 어떤 방안을 찾아야 하는지 등을 진단하는 시리즈를 3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1. 서울 잠실동에 거주하는 김모씨(45)는 12월 초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를 내든지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2. 2년 전 외아들을 결혼시키고 서울 서초동에서 경기 용인 신봉동으로 이사를 간 오모씨(62)는 전세를 주고 있는 서초동 아파트를 내년 초 만기가 돌아오면 월세로 전환할까 고민 중이다.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봤자 이자수입도 적고 마땅히 돈을 굴릴 데도 없어서다. 아들 부부는 차라리 집을 팔아 상가투자를 하자고 권유하지만 오씨는 섣불리 투자에 나섰다가 큰돈을 잃게 될까 두렵다.
#3. 지난주 정부 관계자들은 10.30 전·월세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세대책이 빠진 것 같다는 기자들 질문에 "전세에서 보증부 월세로의 전환 추세는 시장구조 변화에 따른 것인 만큼 인위적 개입은 최소화하려 한다"고 말해 이제 주택 임대차시장에 대한 정책방향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될 것임을 시사했다.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전세난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저금리에 돈 굴릴 데가 없는 집주인은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고,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까운 세입자는 전셋집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전세난을 잡을 뾰족한 묘안이 없는데 자꾸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난감하기만 하다. 정치권은 부작용은 나중 문제고 일단 전셋값을 잡겠다며 전·월세 상한제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전세와 월세, 줄다리기 본질은?
전세제도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떠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의 승강이 같다. 왜 전세제도가 논란이 되는 것일까.
보증금 4억원짜리 전셋집이 6억원으로 올랐다고 치자. 세입자 입장에서 보증금 2억원을 올려주는 경우와 이를 반전세로 월세를 내는 경우 어떻게 차이가 날까. 반전세율은 통상 전세보증금에 연 6~8%를 곱해 월세로 산정한다. 이 경우 오른 전세 보증금 2억원을 월세로 전환하면 세입자는 기존 보증금에 연간 12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아 보증금을 올려준다면 대출이자를 3%(신용도 등에 따라 상이) 정도라 해도 연 이자는 600만원으로 낮아지게 된다.
반면 집주인 입장은 어떨까.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수익을 얻는다고 가정할 때 보증금을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올려봤자 손에 쥐는 돈은 차이가 크지 않다. 현재 은행예금금리를 2%(이자소득세 등 감안) 정도라고 봐도 연 8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400만원 정도 느는 게 고작이다. 반전세로 돌릴 경우와 비교하면 연간 800만원을 손해 보니 반전세 유혹을 뿌리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전세와 월세 줄다리기는 누가 더 이익을 가져갈지에 대한 파워게임"이라며 "인위적인 간섭보다 시장이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대책? 없는데 어떻게 내놓나
정부는 지난달 30일 전·월세대책 발표 때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국토교통부 김재정 주택정책관은 "전반적인 경제구조상 임대차시장에서 전세가 월세 또는 보증부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며 "월세화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고 정부가 개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전해 앞으로 주택 임대차시장 정책방향이 월세로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시사했다.
사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전세대책은 없다. 전세난은 수요와 공급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어서 저금리로 전세주택이 보증부월세나 월세로 전환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단기간에 주택공급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서도 전세난 완화 내용은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건축기간이 짧은 연립과 다세대주택을 최대한 많이 공급하겠다는 게 전부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수년 전 전세난으로 대책을 내놓으라고 해 급하게 도시형생활주택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렸으나 숫자상 공급만 늘었지 전세난 해소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오히려 공급과잉 논란에 주거의 질 저하 문제가 불거져 연립과 다세대주택 증대 방안도 이 같은 부작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입자는 무조건 약자?
업계에서는 전세 거주자들을 약자로만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다.
전세주택에 대한 우리 국민들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결혼을 앞둔 후배가 강남에서 전세를 얻고 싶은데 가진 돈으로는 엄두도 못내겠다며 정부의 무능을 탓하더라"면서 "돈이 부족하면 강남이 아니라 그 가격에 맞는 곳을 찾아야지, 모두 살고 싶어하는 강남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집값이 비싸다'느니 '전셋값이 미쳤다'느니 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거스르겠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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