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레저] 옛모습 되찾은 계곡에 서니, 역사가 말을 걸어오네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13 16:45

수정 2014.11.13 16:45

옥인시범아파트 등 노후시설이 들어서 있던 서울 종로구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속 경관 그대로 복원됐다. 수성동 계곡을 찾은 시민들이 거대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굽어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옥인시범아파트 등 노후시설이 들어서 있던 서울 종로구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속 경관 그대로 복원됐다. 수성동 계곡을 찾은 시민들이 거대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굽어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물소리가 빼어난 계곡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서울 종로구 인왕산 '수성동(水聲洞) 계곡'. 인왕산 수성동 계곡은 경복궁 서쪽 서울 옥인동 179-1번지 일대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수성동은 누상동과 옥인동의 경계에 위치한 인왕산 아래 첫 계곡으로 수성동의 '동(洞)'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동'이 아니라 '골짜기' 또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수성동 계곡 입구에서 바라보니 인왕산 치마바위와 수성동 계곡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느껴졌다. 계곡 길이는 총 190.8m, 폭 최대 26.2m, 최소 4.8m에 이른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시내와 암석의 경치가 빼어난 수성동 계곡

수성동은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됐다. 겸재 정선은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장동(壯洞) 일대 풍경을 8폭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으로 남겨 놓았는데 인왕산 일대 '수성동'도 한 폭에 담아 놓았다.

그림에는 주변 암석이 수려하고 거대한 바위 사이로 개울이 흐르며 계곡에는 장대석을 두 개 맞댄 모양의 돌다리인 기린교가 놓여있다. 기린교 인근에는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의 집터인 '비해당'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기린교는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 보존된 통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인왕산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가 기린교에서 합쳐져서 청계천으로 흘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옥같이 맑게 흐르던 '옥류동 계곡'은 복개돼 주택가로 변했지만 수성동 계곡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수성동 계곡에는 사각 형태의 전통정자 형식인 '사모정'이 위치해 있어 옛 선비문화의 간소함이 묻어난다. 수성동은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 등 많은 시가 전해지고 있고 있는데, 이 일대는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한문학이 사회저변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된 조선후기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에 의해 이뤄진 위항문학 중에서도 위항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박윤묵은 평민시인 천수경, 왕태, 장혼, 김낙서 등과 어울려 옥계시사(玉溪詩社)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서로 모여 함께 시회를 즐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수성동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사모정.
수성동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사모정.


■'비움'의 디자인 개념 도입, 원형에 가깝게 복원

당초 수성동 계곡 복원은 주변경관을 훼손하고 안전문제가 우려되는 노후 아파트(옛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단순 녹지를 조성하는 계획으로 추진됐으나 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수성동 계곡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돌다리와 수성동 계곡을 문화재인 서울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면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인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속 경관으로 복원됐다.

우선 옛 수성동 계곡처럼 암석지형을 회복시켜 수성동의 원형을 되찾고 역사와 생태가 어루어진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특히 복원사업은 역사, 전통, 생태 공간이라는 취지를 바탕으로 인위적인 시설물을 최소화해 옛 경관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계류부 암반지역은 최대한으로 암반을 노출시켜 자연미를 살리고 녹지 위주로 조성했으며 시설물은 전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시설물 위주로 돌, 목재 등 자연소재를 이용해 설치했다. 주요 시설물로는 계곡 옆으로 사모정 1동과 일부 목교, 돌다리 등만을 최소로 설치해 '비움'의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가장 원형에 가깝게, 자연친화적으로 복원하자는 취지를 십분 살린 것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수성동 계곡 복원사업을 펼친 서울시 종로구는 지난 9월 열린 제6회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조선의 비경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과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며,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600년 전통의 문화 역사도시 종로구의 대표적인 명소로 탈바꿈해 인근에 위치한 한양도성, 윤동주문학관, 박노수미술관 등과 연계한 역사·문화 관광벨트로 사랑받고 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레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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