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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국가란 무엇인가?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0 16:56

수정 2014.11.20 16:56

[여의나루] 국가란 무엇인가?

최근 우리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야 할 일인데도 조용하게 넘어간 사건이 2개 있었다. 하나는 지난 8월 중국이 마약 관련 혐의로 체포한 한국인 2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일이다. 또 하나는 지난 10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재연기하기로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일이다.

사형집행의 경우 비록 외국에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는 엄연히 우리 국민이다. 우리 외교당국은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노력을 더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다.
과거 총리까지 나서서 온갖 노력을 다한 영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또한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도 한반도의 안정적인 안보 유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결과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결정돼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왜 조용한가 하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국가의 존재에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하기 위한, 누구의 국가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는 16~17세기에 이르러서야 중앙집권화를 이룩했다.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중앙 권력집중의 폐해는 18세기 말~19세기에 자유주의 혁명을 불러왔다. '야경국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야경국가는 국민에게 공정한 출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반성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복지국가'의 시대를 열었다. 복지국가의 반작용으로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아직도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서구사회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치열한 논쟁과 반성을 거쳐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서구 사회보다 훨씬 먼저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거버넌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일본의 '중앙관리 자본주의'도 아닌 것 같다.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서구 사회의 거버넌스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없다는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도 마찬가지다. 1986년 당시에는 장기독재를 막는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래서 '1노 3김'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기 위해 정해진 5년이라는 기간도 양해가 됐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몇몇 소수 족벌들이 번갈아 집권하기 위해 만든 중남미의 단임 대통령제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2006년 12월 말 내가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일이다. 나는 '정부가 정책을 수립한 후 실제로 집행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를 관련 부처에 조사를 시켜 보았다. 제기·입법·시행까지 평균 35개월이 걸렸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정부가 입법한 2500여건을 조사한 결과다. 정부가 하고자 하는 정책을 결정하고 나서 실제로 집행하는 데 평균 3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정책결정 기간과 예산반영 기간을 제외하고도 그렇게 소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 임기 초에 결정한 정책도 실제로 시행되는 것은 임기 말에나 가능하다는 통계 수치다.

거버넌스 문제는 중앙정부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지방정부가 없다. 우리나라 지방에는 교육·치안(안전)·일반행정을 담당하는 3개의 기관이 각각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자치를 표방하지만 자치단체장이 책임지는 교육자치가 아니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주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는 거버넌스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별다른 준비 없이 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시작된 제도다. 그 후 지방정부의 거버넌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우리 사회에서는 없었다.
국민의 종합적인 삶의 향상과 무관한 정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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