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입시와 교육

'노숙자 소녀, 하버드에 가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언론에도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내용은 15세부터 거리에서 생활하던 미국 소녀 리즈 머리가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는 고난 극복기였다. 마약 중독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리즈는 가족이 해체되면서 길에 나앉게 됐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지하철과 공원에서 잠을 청하던 소녀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 대안학교에 입학한다. 거리를 전전하며 공부를 하면서도 고교 4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친 그는 '뉴욕타임스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가 쓴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에는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한국에서라면 리즈 머리의 성취가 가능했을까'라는 짓궂은(?) 의문이 떠오른 것은 입시철 풍경을 다시 접하면서다. 수능 점수 1~2점에 당락이 좌우되는 한국의 입시라면 어땠을까. 그의 책을 찾아보니 대학입시 관련 부분은 적은 분량이었다. 학교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대안학교라는 핸디캡이 있었다. 학비를 고민하던 그가 매년 1만2000달러를 제공하는 뉴욕타임스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나 하버드 입학허가를 받게 된 이유는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넘어야 했던 장애를 진솔하게 적어낸 에세이(자기소개서)가 그걸 읽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이다.

특이한 점은 하버드대학 입학 과정이다. 뉴욕에 있는 학교 동창회장과 면접을 한 것이다. 동창회장의 사무실에서 학교와 장래 희망, 교육과 장래의 목표 등에 관해 정중한 대화를 나눴다는 게 면접에 대한 리즈 머리의 기억이다. 비록 예비합격자로 선정돼 2차 면접을 치러야 했지만 어쨌든 첫 번째 결정권한은 동창회장에게 있었던 셈이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학교로 일제히 소집해 삼엄한(?) 감독 속에 철저히 정해진 방식에 따라 면접을 치르는 우리와는 딴판이다. 면접을 치르고도 많은 대학교에서 요구하는 수능 최저등급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과도 다르다. 조심스럽지만 하버드가 한국의 입시제도를 따랐다면 그의 입학 가능성은 희박했을 것이다. 아직도 장래의 가능성보다 눈에 보이는 점수를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인 사실은 수시입학이 늘어나면서 한국판 리즈 머리 탄생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대학마다 이름이 다르지만 다양한 유형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학생, 고교 3년간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농어촌지역 학생, 회장 등으로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전형이다. 점수만 중요한 게 아니다 보니 위험이나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나 교사 추천서를 읽다보면 감동적 사연이 종종 눈에 띈다. 점수로 나타내기 어려운 학생만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시험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능시험에서의 오류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혼란' 식으로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시는 교육의 일부분이다. 하나의 과정일 뿐 본질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입시가 마치 교육의 모든 것인 양 너무 호들갑스럽다.

학부형이 아니어도 온 나라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모든 언론이 입시에, 수능에 초점을 맞춘다.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판 리즈 머리 스토리를 발굴, 입시와 교육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