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6·①) 낡음과의 이별인줄 알았더니.. 낡음과의 전쟁이 돼버린 '정치개혁'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5 17:02

수정 2014.11.25 17:02

여야 '셀프개혁' 위기
개혁, 개시도 안했는데… 의원들 반발에 용두사미 '낌새'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6·①) 낡음과의 이별인줄 알았더니.. 낡음과의 전쟁이 돼버린 '정치개혁'

"당선 축하연과 환영연은 화려했다. 매달 세비를 받고 후원금도 넉넉하게 모았다. 특권층 예우와 대접도 깍듯이 받았다. 그러나 일도 그렇게 잘 했을까 생각하면 부끄럽다."

지난 2009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한 비례대표 초선의원이 읽은 '한 초선 의원의 자성'이라는 반성문 중 일부 내용이다. 국회의원으로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정작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도 일을 잘 했을까라는 반성이다.


지금 여의도는 '혁신 대결'에 한창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9월 하루 차이로 각각 보수혁신위원회와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국민들의 마음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려 정권을 유지 또는 되찾기 위해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가 마음 먹고 '특권 내려놓기'에 나섰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전에 동료 의원들의 마음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최근의 혁신 움직임은 때가 되면 진행하는 '의례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혁신보다는 계파가 더 중요?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는 지난 9월 29일부터 매주 1회 이상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회의 직후에는 회의에서 논의됐던 결과를 공개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기대를 모았다.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1차 혁신안은 내년 세비 동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정치인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국회의원 겸직 금지,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등이다. 대부분이 국민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던 내용들이다. 혁신에 대한 지도부의 의지도 강하다. 김무성 대표는 "혁신은 실천이고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혁신하겠다"며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당장 동료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혁신안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은 드러내놓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김성태 의원은 성명을 내고 "'이름만 혁신안'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면서 "보여주기 정치쇼가 아니라 큰 틀에서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진정한 혁신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의정활동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한다', 출판기념회 전면금지 방안에 대해서는 '정치신인에게 불리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무성 당 대표는 세비 관련 혁신안에 대해 수정해 볼 것을 혁신위원회에 지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새누리당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보수혁신위원회 혁신간담회를 열었다.

혁신안 반대 취지의 발언을 했던 의원들을 중심으로 초청하고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날 모습을 드러낸 의원은 단 4명뿐이었다. 이들 마저도 혁신안에 대한 의견 조율보다는 혁신위원회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반면 25일 열린 통일경제교실에는 김무성 당 대표를 비롯해 20여명의 의원이 참석했다.

단순히 참석 인원으로만 비교할 수는 없다. 모임의 성격이 다르고 특히 간담회는 반대 취지의 발언을 한 의원들만 대상으로 초청을 했다는 점에서 참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속사정이 어떻든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혁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혁신위원회 활동이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 간 힘겨루기가 될 여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혁신간담회에 참석한 김태흠 의원은 "혁신위가 당 대표와 위원장이 파워 게임을 하는 걸로 비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혁신안을 놓고 김 대표는 세비 관련 내용을 일부 수정해서 9개 혁신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김문수 위원장은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혁신위원회는 전체회의 대신 소위원회 위주로 토의 방식을 바꾸고 2단계 정당개혁 혁신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6·①) 낡음과의 이별인줄 알았더니.. 낡음과의 전쟁이 돼버린 '정치개혁'


■지속성 의문에 추상적인 내용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의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정치혁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가 내년 2월 8일로 결정된 후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 '당권.대권 분리' 같은 오래된 정치논쟁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노계'로 분류되는 김동철 의원은 지난 21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당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치른 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친노 수장 격인 '문재인 불가론'을 제기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는 전제하에 (당선이)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이런저런 견제가 집중되는 것"이라며 문재인 의원을 우회적으로 지원했다.

지난 9월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혁신실천위원회는 1차적으로 확정한 정치개혁 방안에 '깨끗하고 공정한 전당대회 시행'을 포함시켰다.

원혜영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혁신실천위원회는 매주 정례회의를 열고 권역별로 혁신에 관한 당원 의견수렴에 나서고 있다. 현재 정치혁신위가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방안은 국회의원 수당 등 산정위원회 신설, 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원회 신설, 당내 선거 관여 금지, 당윤리위원장 외부인사 임명 등이다. 대부분 당내 정치개혁과 연관이 높은 내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개혁 방안이 너무 내부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정치권 전체에 대한 혁신 방안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야권 관계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놓은 정치혁신 방안은 당내 계파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에 너무 집중된 것이 사실"이라며 "다른 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혁신위 방안이 지속성을 유지할지도 의문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불만 끄자는 식의 방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예컨대 정치혁신위는 차기 대선후보 경선에 의원들의 캠프 참여를 금지하는 조항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코앞에 닥친 전당대회에만 우선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정치혁신위가 내놓은 방안들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원혜영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깨끗하게 치르기 위해서 의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을 공식적으로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당장 중요한 이번 전당대회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 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선언적인 내용 위주로 구성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혁신위는 선언적인 내용을 구체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 수렴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 국회 내에서 공청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정치개혁 방안의 최종 목표인 입법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정치혁신위는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혁신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치개혁 방안의 일환인 '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원회 신설'이 이번 토론회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적 공정성, 중립성, 독립성이라는 3대 원칙 아래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개혁, 권력구조 재편과 정치혁신에 전력투구할 것"이라며 "선거제도 개혁과 정치혁신 방안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여야의 개혁 움직임은 전반적으로 미흡한 편"이라면서 "특히 새누리당 혁신위를 보면 초기에 야심차게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당내 의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추진력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권 내려놓기도 좋은데,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대안 없이 특권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아직 혁신 작업이 끝나지 않았지만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의원들로부터도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이두영 부장 김기석 전용기 김학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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