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해양 실크로드를 가다] (13) 마젤란 선교지 필리핀 세부

노주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02 09:58

수정 2014.12.02 09:58

필리핀 세부 시청 앞에 전시돼 있는 마젤란 십자가. 1521년 4월 7일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한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다.
필리핀 세부 시청 앞에 전시돼 있는 마젤란 십자가. 1521년 4월 7일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한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다.

지난달 25일 오전 베트남 나트랑에서 일정을 마친 해양실크로드 탐험대는 다음 기항지인 필리핀 세부를 향했다. 하지만 탐험대를 태운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는 세부의 항만사정으로 불가피하게 입항을 취소하고 뱃머리를 수비크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해양실크로드 탐험대가 비록 기항은 하지 못했지만 세부는 19세기까지 필리핀 제일의 항구였다. 필리핀 국교가 카톨릭이 된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세계 항해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교차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세부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에 처음으로 도착했다. 이때 이미 원주민의 도시가 번창하고 있었고 이후 스페인 세력이 1565년 이곳에 필리핀 최초 선교기지와 정착지를 조성했다. 그후 스페인 식민지 수도는 마닐라로 옮겨졌으나 세부는 중남부 중심지로 남게 됐다. 동쪽의 세부해협과 막탄 섬으로 외해로부터 보호되고 세부해협과 서쪽 산맥사이에 위치해 항구로 천혜의 환경을 자랑한다. 스페인 식민지가 되기 이전부터 교역의 거점으로써 13세기부터 중국의 명나라 외에도 동남아 여러 나라와 해상 무역을 해온 해항도시로 알려져 있다.

세부는 아직도 마젤란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유럽의 침입을 최초로 막아낸 필리핀 영웅으로 추앙되는 라푸라푸의 동상과 마젤란 기념비를 들 수 있다. 마젤란의 십자가와 산토니뇨 교회, 산 페드로 요새의 유적지도 볼 수 있다. 라푸라푸는 필리핀 국립경찰의 문장에 들어있을 정도로 필리핀사람에게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막탄의 라푸라푸 시티로 그 이름이 남아 있고 한국인에게 다금바리로 잘 알려진 고급어종인 라푸라푸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1521년 4월 7일 포루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부에 도착했다. 그는 세부의 왕이었던 라자 후마본을 회유했고 라자 후마본과 왕비 하라 아미한(후에 주아나 여왕이 됨)과 주민들은 그 해 4월 14일 세례를 받고 필리핀 최초 기독교인이 됐다. 마젤란은 지방 영주 간의 싸움에 개입해 기독교로 개종시켰지만 4월 27일 막탄 섬에서 마젤란은 따르지 않았던 원주민 지도자였던 라푸라푸가 이끄는 군대와의 싸움에서 패해 온 몸이 난자당한 채 죽게 된다.

마젤란이 살해당한 바로 그 자리에 원주민 지도자였던 라푸라푸의 기념비와 마젤란 기념비가 함께 서 있다. 마주보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라푸라푸 동상의 등 뒤에 마젤란 기념비가 위치해 보는 이에게 묘한 감회를 느끼게 한다. 세부 시민들은 마젤란을 환대하고 서구에 의한 기독교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마젤란을 물리친 라푸라푸를 국민영웅으로 기념하고 있다.

마젤란이 1521년 4월 21일 꽂은 '마젤란 십자가'는 세부의 왕 라자 후마본과 그 일족들이 필리핀 최초로 페드로 발데라마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높이 3m의 나무 십자가다. 마젤란 십자가가 보관돼 있는 팔각정 내부에는 당시의 세례식 광경이 그려져 있다. 마젤란 십자가에서 5분 정도 가면 산토니뇨 성당이 있다. '어린 예수'라는 뜻의 산토니뇨 성당은 1565년에 레가스피가 세운 성당으로 '성 어거스틴 성당'이라고도 한다. 마젤란이 선교 당시 왕비에게 세례를 받은 선물로 줬다는 어린 예수상(산토니뇨)이 보관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원주민들은 불타는 오두막에서도 타지 않고 남아있던 산토니뇨를 기념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 그것이 세부에서 가장 유명한 '시눌로그 축제'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세부는 팽창하던 서구 제국주의와 이름없는 자그마한 섬 항구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남긴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라푸라푸가 마젤란을 죽이고 전투에서 이겼으나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침략 당시 스페인 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이라는 나라 이름이 지어지게 됐으니 인물은 가고 없어도 이름은 남아 후대에 전승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세부에서 실감하게 한다.

이명권 한국해양대 교수
이명권 한국해양대 교수

이명권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과 교수·이윤석 한국해양대 선박운항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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