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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애플 말고 팬택이었더라면…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10 16:44

수정 2014.12.10 22:43

[이구순의 느린 걸음] 애플 말고 팬택이었더라면…

지난 일을 놓고 '만일 ○○했더라면…'이라고 돌이키는 일처럼 바보스러운 일도 없다. 또 바보스러운 줄 알면서도 자꾸 하게 된다. 현재의 상태에 대해 아쉬움이 진할수록 바보스러운 일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팬택 사태가 그 하나다.

지난달 온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소위 '아이폰6 대란'. 이동통신 회사들이 아이폰6을 한 대라도 더 팔겠다고 법에 정해진 것보다 많은 불법 휴대폰 보조금을 풀고 이 소식을 인터넷에 살짝 흘리면서 촉발됐다. '아이폰6 대란'은 이동통신 회사, 소비자, 보조금을 규제한 정부 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유독 한 축만 내심 웃고 있었을 거다. 애플이다. 이 대목에서 바보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애플 말고 팬택이었더라면….'

사실 애플은 미국 이외 어느 나라에서도 독자적으로 마케팅하는 법이 없다. 이동통신회사에 판매하고 싶은 물량을 모두 떠넘기고 세세한 마케팅 방식을 모두 계약서에 담지만 실제 자신들이 나서서 마케팅하지는 않는다. 결국 이동통신 회사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폰6를 팔아야 했다. 사실 이것이 '아이폰6 대란'의 드러나지 않은 단면이다. 이런 '배짱 판매'에 우리 이동통신 3사가 들여온 아이폰6 시리즈 중 아직 창고에 남아있는 물량만 12만여대로 추정된다.

팬택이 지난 8월 법정관리 직전에 이동통신 회사들에 스마트폰을 구매해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했던 물량이 6만대 정도다. 당시 이동통신 회사들은 팬택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유는 "팬택 스마트폰은 인지도가 낮아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보스러운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애플에 쏟았던 마케팅 비용 절반만 팬택에 들였더라면….'

굳이 팬택을 놓고 국내 중소기업의 역사라느니, 국산 휴대폰에 대한 애정이라느니 하지 않아도 팬택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팬택의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폰에 마니아가 있다고 하지만 'SKY' 폰 역시 마니아층이 충분하다.

팬택 스마트폰은 기술력이 달려서,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지 못해서 퇴출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유별난 보조금 중심 유통시장에서 현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 제품이었던 게 원인이다. 다시 바보스러운 생각이 든다. '이동통신 회사들의 마케팅 대상이 아이폰 말고 SKY였더라면….' 팬택이 1차 매각 시도에서 주인을 찾지 못하고 다시 주인 찾기에 나선다고 한다. 아마도 새 주인의 후보는 해외 휴대폰 제조업체들인 듯싶다.

그런데 꼭 해외에서 주인을 찾아야 할까? 콘텐츠와 통신망·플랫폼·단말기가 융합하는 시대다. 국내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을 하는 어느 기업이 팬택의 기술력을 인수, 'SKY'의 명성을 되돌려 주면 안 될까?

팬택이 해외에서 주인을 찾게될지 아니면 결국 회사 문을 닫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팬택의 최종결과에 대해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만일 ○○했더라면…'이라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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