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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럽, 투자 아닌 소비에 집중하라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26 17:38

수정 2014.12.26 17:38

[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럽, 투자 아닌 소비에 집중하라

요즘 브뤼셀과 유럽 전역에는 "투자가 경제회복 열쇠를 쥐고 있다"는 주문이 널리 퍼져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새 경제전략 핵심은 앞으로 3년간 투자규모를 3150억유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행위 제안은 투자에 초점을 맞춘 것부터 자본조달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도됐다.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의 새 집행부 출범 이니셔티브로 집행위가 이런 계획을 제시한 건 결코 놀랍지 않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침체에 갇힌 상황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투자라는 구상은 지속가능 회복이 공공 담론으로 깊숙이 자리한 지금 핵심적인 것이 됐다. 이는 투자가 늘수록 자본량과 산출이 늘기 때문에 더 좋다는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유럽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EU 당국(그리고 많은 다른 이들이) 유럽-특히 유로존-은 '투자갭'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에 비해 연간 기준으로 4000억유로 더 적다는 게 이 같은 의심을 불렀다. 그러나 비교가 잘못됐다. 2007년에는 신용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러 투자낭비가 심했다. 집행위도 신용 붐 이전을 적정 투자수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고, 이에 따르면 투자갭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붐 이전 시기도 지금 유럽 경제에는 좋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했기 때문이다. 바로 유럽의 인구 흐름이다. 유로존 노동연령대 인구는 2005년까지 늘었지만 2015년부터는 줄게 된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심각한 잠재성장률 하락을 뜻한다. 낮은 성장률은 필요 투자 규모가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존이 붐 이전 수준의 투자율을 유지하면 조만간 경제규모에 비해 자본규모가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뭐? 자본이 많은 건 좋은 거잖아."

그러나 산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이 늘기만 한다는 건 자본수익률이 어느 때보다 낮아지고, 시간이 지나면 은행 부문의 악성채권(NPL)이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유럽의 취약한 은행 시스템을 생각하면 지나친 자본 축적은 EU가 누릴 만한 사치품이 아니다.

다다익선 의문을 제쳐두더라도 융커의 계획이 총투자에 어떤 단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투자 결정 요인에 관한 학술연구에 따르면 투자를 결정짓는 주된 변수는 성장(또는 성장전망)이다. 금리는 대개 그다음으로 고려되는 요소다. 당연히 통화정책은 투자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없다.

사실 시장 신호는 분명하다. 지금 EU 대부분 지역에서 활용가능한 자본이 부족하지는 않다. 여전히 대출이 어려운 유로존 주변부 규모는 유럽 경제에서 4분의 1도 안된다. 따라서 투자가 아직도 부진한 이유가 자금 부족은 아니다.

융커안에 따르면 EU가 조달할 자금 210억유로의 최대 15배에 이르는(3150억유로) 대규모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설득력 없는 계획이다. 유럽 은행권이 보유한 자본은 이미 1조유로를 넘는다. EU 예산으로 보증하는 형태의 210억유로 추가 자금이 은행들의 투자 자본 대출 유인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융커안은 특히 다른 투자보다 대개 더 위험한 사회기간망(인프라 스트럭처) 계획을 타깃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인프라 계획의 위험은 돈 문제가 아니다. 각국별 정치, 규제 장벽이 위험요인이다. 이 문제들은 EU 예산을 통한 보증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간 전력선이 여전히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국이 독점적 시장을 개방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철도, 도로 건설 계획 역시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의 반대 때문에 진행이 더디다. 유럽 인프라 투자의 실질적인 장애물은 이런 것들이다.

대규모 투자는 겉보기에 늘 매력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과 영국은 유로존에 좋은 본보기다. 양국 경기회복 동력은 가계 재무구조 개선에 힘입은 소비 증가였다.
유럽 정책담당자들이 경제회복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투자가 아닌 소비에 집중해야 한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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