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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서 늘어나는 '질 건조증', 폐경기 여성 전유물 아냐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2 17:32

수정 2015.01.02 17:32

20~30대서 늘어나는 '질 건조증', 폐경기 여성 전유물 아냐

회사원 김모 씨(26·여)는 신혼생활에 한창 깨가 쏟아져야 하지만 남편과 조금 어색해진 상태다. 얼마 전부터 남편과의 잠자리를 피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 됐다. 남편이 싫어진 게 아니라 질건조증이 점차 심해진 탓이다. 이렇다보니 부부관계를 갖는 게 전혀 즐겁지 않다. 마찰되는 느낌만 강할 뿐 쓸리고 아프다. 다음 날 화장실을 가서 소변을 볼 때엔 쓰라려서 짜증이 날 지경이다.
여성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윤활액을 써봐도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온통 '수술이나 받으라'는 광고에 답답하다. 그는 큰맘먹고 산부인과를 방문할 생각을 굳혔다.

질건조증은 흔히 갱년기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20~30대 여성에서도 나타난다. 이 증상이 갱년기에 주로 발생하는 것은 여성호르몬 생산량이 감소되면서 난소 등도 노화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복잡한 현대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등이 원인이 돼 젊은 여성에서도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20대 여성 중 '혈기왕성한 나이에 왜?'하고 고민할 수 있지만 평소 불규칙한 생활습관이나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도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므로 병원을 찾는 게 좋다.

고현주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유즙분비호르몬이 과도한 경우에도 질건조증이 유발될 수 있다"며 "위장약 등 약물복용, 자궁내막증(endometriosis), 자궁근종, 우울증, 지나친 다이어트 등이 젊은 여성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선한 채소·과일 섭취가 부족하거나 운동을 과도하게 한다면 질 주변 샘분비에 영향을 미쳐 질건조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질건조증은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만족스러운 삶을 결정하는 데 성생활이 한몫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성관계시 애액이 감소해 심한 통증이 유발되면 성생활을 기피하게 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성교통이 심해지면서 뒤늦게 병원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보통 질건조증을 오랜 기간 앓아온 경우가 많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자'며 버티는 것은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 굳이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 것 자체가 창피해서다. 아직까지 여성의 성에 보수적인 시선이 한몫한다. 이밖에 질혈류량 감소, 질근육의 긴장, 신경전달장애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므로 조기에 치료받는 게 상책이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질근육 긴장으로 생기는 성교통의 원인은 단순한 산부인과질환·질벽외음부손상에 그치지 않고, 배우자 문제·트라우마 등 심리적 원인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필요한 경우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고현주 원장은 "질건조증은 에스트로겐을 활용한 국소치료 및 경구복용법이 주가 되며, 최근엔 질내 미생물 군집(microbiome) 균형을 회복해 질건조증을 치료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며 "생활습관 교정 면에서는 여성호르몬 대사에 도움이 되는 식이요법을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스트로겐으로 오래 치료하면 유방암 등이 나타날까봐 겁먹는 여성은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을 질점막에 주사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윤활유는 일종의 '쇼핑'을 통해 자신에게 잘 맞는 윤활액 등을 선택하도록 한다. 성교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는 일시적인 방법이므로 병원 치료를 병행해 질건조증의 원인을 교정하고, 질내 항상성을 회복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성 혼자 아등바등 문제를 처리하려는 것보다 파트너와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엔 다양한 기기 시술만으로 특정 세포를 자극해 활성화시키면 질 건조증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병원이 적잖다.

고 원장은 "기기치료를 단독 시행하면 증상이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나, 원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순히 피부에 적용하는 고주파치료 효과로 설명되지 않는 질점막의 특수성을 간과한 부분이 적잖다"고 지적했다.
"일시적으로 좋아지다가 결국 문제가 재발하는 등 오히려 해로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드물지만 질건조증을 계기로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뜻밖의 결과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고 원장은 "질건조증이 심각해 산부인과에서 유즙분비호르몬 수치가 높아 심층적인 검사를 시행한 환자가 알고 보니 '뇌하수체 선종'으로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시행한 경우도 있다"며 "모든 병이 그렇지만 원인을 찾아내는 게 일시적인 증상 완화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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