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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 (4) 신혼집 마련·양육비 부담… "결혼보단 당장 먹고사는게 우선"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6 17:12

수정 2015.01.06 21:27

<4> 막막한 현실에 늦어지는 결혼

전셋값 나날이 치솟는데 대출 받자니 평생 '이자 족쇄'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남녀 "주택마련에 1억8천만원 투자"
구조조정·조기퇴직 확산 등 불안정한 직장환경도 결혼 미루게 되는 주요 원인
"한국, 가정보다 성공 중시 영유아·출산 정부지원 늘려 미래 그릴수 있는 희망 줘야"


[한국인의 삶] (4) 신혼집 마련·양육비 부담… "결혼보단 당장 먹고사는게 우선"

#1. 34세 회사원 박준표씨(가명)는 지인들에게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얘기한다. '조금 더 즐기다 가야지'하는 생각도 있지만 결혼 때문에 입은 상처도 발목을 잡는다. 한 차례 결혼을 준비하다 헤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비용 등 경제적 고민은 당분간 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35세 직장인 이진효씨(여.가명)는 결혼 계획이 없냐는 주변의 질문에 한숨부터 나온다. 회사 일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고, 주말 출근은 일상이 됐다. 이렇다 보니 집에 가면 잠자기 바쁘고 소개팅 할 시간은 커녕, 누구를 만날 마음의 여유 조차 없다.
이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가려면 자주 봐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상황을 이해해 줄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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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언제 할 거니."

취업 전쟁에서 한숨 돌린 2030세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결혼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리고 있다. 취업시기가 늦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시기도 늦춰진 데다, 늦게 시작한 만큼 결혼비용 마련도 쉽지 않다. 여기에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결혼을 미루게 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결혼은 적령기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할 '인생의 통과의례'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로 바뀌는 추세다.

[한국인의 삶] (4) 신혼집 마련·양육비 부담… "결혼보단 당장 먹고사는게 우선"

■"전셋값 막막…결혼 생각하기도 싫어"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과 헤어진 박씨의 경우 당시 주택구입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고생이 컸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신혼부부 전세대출을 알아봤지만 부부 합산 연봉이 5500만원을 넘어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씨는 "전셋값은 매매가에 육박하는데 당장 모아둔 돈은 적고, 이를 은행 대출로 메우려니 이자 부담이 너무 컸다"며 "당장 목돈이 필요한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인데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하지 못한 듯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혼부부가 결혼 준비 중 가장 많이 지출하는 내역은 주택마련 비용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함께 운영하는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들은 주택 마련에 1억8028만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평균 초혼 남성과 여성의 연령이 각각 32.2세, 29.6세인 것에 비춰볼 때 스스로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액수다. 박씨는 "직장인이 한번에 큰 돈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할수록 답답해 아예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A씨(38)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 '신혼부부에 대한 배려는 없는 기성세대를 위한 정책'이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A씨는 "경기부양을 위해 집값을 올린다는데, 그렇게 되면 신혼부부의 전셋값 및 월세 부담은 되레 커지는 것 아니냐"며 "하나의 정책을 만들더라도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혼 후 과연 행복할까?

결혼 후 닥칠 현실도 외면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에게 맞벌이는 당연한 일이 되면서,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 물론 성공적으로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워킹맘도 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주변의 도움 없이 육아와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힘들다. 이 때문에 출산을 하려면 아기를 돌봐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의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회사에서는 워킹맘을 배려한다고 하지만 '일에 올인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상사도 부담이다. B씨(28·여)는 "야근도 잦은데 '승진하려면 회사에 더 투자하라'는 상사의 충고와 엄마를 찾는 아이 사이에서 힘들게 사는 워킹맘 선배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만일 육아로 인해 현재의 자리에서 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결혼이 망설여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구조조정에 조기 퇴직 등 불안정한 노동 상황도 결혼 결정을 더 힘들게 만든다. 이렇다 보니 2030세대에게 결혼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보다 '계산기'부터 두드리게 되는 냉혹한 현실이 되고 있다.

일에 치여 결혼이 늦어진 이들도 있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C씨(39)는 "인사권을 쥔 상사가 야근과 특근을 근태의 기준으로 삼아 일주일에 두번 야근, 주말 특근이 공식이 돼버렸다"며 "쏟아지는 일들을 정신없이 하다 보니 나이만 먹고 결혼만 늦어졌다"고 한탄했다.

기업은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며 가족이 날을 정해놓고 이른 귀가를 권하지만 그때뿐인 곳도 많다.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를 만날 여유도 없고, 결혼한 이들을 봐도 가족은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 사회가 가족보다는 일의 성공이 중요한 것처럼 만들었다"며 "이처럼 행복한 가정을 꿈꾸기 어려운데 누가 결혼하려고 애를 쓰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기업이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영유아 및 출산 지원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미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필수 아닌 선택이 된 결혼

이렇다 보니 결혼연령층도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2.2세, 여자 29.6세로 전년에 비해 각 0.1세, 0.2세 상승했다. 10년 전에 비해 남자는 2.1세, 여자는 2.3세 올랐다.

결혼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사회조사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대답은 2008년 68.0%를 차지했지만 2012년 64.7%, 2012년 62.7%로 떨어지다가 2014년에는 56.8%까지 내려갔다. 반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에 미혼여성이 55%로 미혼 남성(41.6%)보다 높게 나타났다.


박수경 듀오 대표는 "금전적인 문제 외에도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결혼을 꺼리는 젊은이들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결혼에 대한 긍정적 가치와 의미를 홍보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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