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삶]

(7) 쓸 돈도 남은 돈도 부족하다.. ‘결국 빈손만 남은 노년’

빈곤이 일상화된 노후 생활

아들과 딸을 출가시키고 이제는 남편도 퇴직해 단출하게 두 식구만 남았다. 어느새 예순을 훌쩍 넘긴 주부 김씨. 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김씨는 이제 흰 머리가 듬성듬성 난 남편과 낮 시간을 보내는 게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사실 김씨는 예순 즈음이면 으레 꿈꿔오던 삶이 있었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서울에 있는 집을 처분해 교외에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며 살 수 있는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퇴직한 남편과 동네 산보도 하고 주말이면 아들 며느리나 딸 사위 부부가 종종 찾아와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손자 손녀가 생기면 데리고와 가끔씩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옛날이야기도 해주며 소일거리를 하고, 평일에는 젊은 시절 여유가 없어서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떤다. 종종 남편과 드라이브도 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젊은 시절 김씨가 꿈꿔온 노후였다. 김씨에게는 소박하다면 소박한 꿈이었지만 막상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 그 꿈은 더 이상 소박하지 않다. 그녀가 꿈꾸던 노후는 먼 이야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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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의 여유가 웬말

사실 두 자녀를 출가시키고 나서도 서울 도심에서의 바쁜 아침은 여전하다.

당장 김씨는 아침마다 전쟁이다. 맞벌이하는 딸이 월요일 아침 김씨 집으로 데려온 손자를 맡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5년 전 며느리가 손녀를 맡아달라고 부탁할 때도 애를 보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 아이를 부탁하기가 여의치 않은 딸의 통사정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딸이 아침 일찍 출근하며 맡긴 세살배기 손자를 안은 김씨는 하루 종일 아이를 챙기느라 노는 날이 없다. 아이 간식을 챙기고 나서 이것저것 놀아주고 나면 한잠을 재운다. 아이가 잠든 사이 김씨도 잠깐 눈을 붙이지만 애가 잠에서 깨면 행여 엉뚱한 사고라도 칠까 항상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한가롭게 거실 바닥 한 번 닦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친구들 모임에라도 갈라치면 딸의 스케줄부터 확인하며 눈치를 보게 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남편이 가끔씩 김씨를 도와 집안살림을 챙기기도 하지만 손자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김씨 몫이다. 매달 양육비라며 딸이 내미는 돈 봉투가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노후에도 '나갈 돈' 만만찮아

공무원으로 퇴직한 김씨 남편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퇴직금과 매달 조금씩 나오는 연금은 사실 김씨 부부가 노후를 꾸려가는 데는 부족하지 않은 자금이다.

하지만 현재 정작 김씨 부부에게 남은 돈은 얼마 없다. 사업을 하는 아들이 조금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해 기반을 잡아가던 아들은 최근 불경기에 사업이 기울면서 어렵게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녀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느 정도 사업기반이라도 잡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김씨 부부는 아들 부탁을 마냥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남편의 퇴직금과 김씨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 몇 푼을 보태주고 나니 목돈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나마 매달 들어오는 연금이 있어 김씨 부부가 살림살이를 할 수는 있지만 아들 내외 용돈도 주고 가끔 훌쩍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돈 들어갈 곳도 적지 않다. 노후라고 돈 쓸 데가 있으랴 방심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며느리와 사위, 점점 커가는 손자손녀들까지 식구가 늘면서 쓸 곳도 늘어났다. 며느리나 사위 생일이면 으레 무엇이라도 챙겨줘야 하고 이제 유치원생이 된 손녀가 집에 놀러오면 용돈을 쥐여줘야 한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할머니 할아버지 된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입에 풀칠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선뜻 주머니를 넉넉하게 열게 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 조금이라도 더 재테크에 눈을 돌릴걸 하는 후회가 들지만 곧 소용없는 생각이라는 걸 안다. 그나마 병원비 나가는 곳 없이 건강한 게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생활비 걱정하는 '빈손 노후'

김씨 부부에게 이른바 '빈둥지증후군'은 없다. 빈둥지증후군은 심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자녀가 독립해 집을 떠난 뒤에 경험하게 되는 외로움이나 상실감이다. 이 시기면 그동안 남편과 두 아이들 뒷바라지하다 훌쩍 떠나버린 두 아이의 빈자리에 두 내외가 허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몰래 걱정하게 되는 생활비와 다시 시작된 육아, 여유는커녕 팍팍해진 생활이 지금 김씨 부부의 실상이다.

실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50대 비은퇴 가구들은 행복한 노후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생활비 부족을 꼽는다. 이어 이른 정년퇴직과 자녀 결혼 및 사업자금 지원, 과도한 양육비·교육비도 노후생활에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노후 생활자금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득이 적거나 자녀 교육비와 결혼자금이 부담 되고, 갚아야 할 빚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구주 연령별 노후준비 정도를 보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노후준비 지수는 낮아지고 있다. 건강이나 심리적 안정, 사회적 관계 등 비재무적인 영역에서는 연령에 따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금융자산이나 부동산, 연금 등 재무적인 측면에서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노후준비 지수가 확연히 낮아졌다. 20대의 재무준비지수는 100을 만점으로 했을 때 68.3으로 절반을 훌쩍 넘지만 50대는 33.3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부의 경우 독신가구보다 은퇴지수가 낮다.
독신가구의 노후준비 지수가 60.0인 데 비해 부부가구의 노후준비 지수는 48.3으로 낮았고 이들 부부가구 내에서도 자녀가 있을 경우 36.0으로 하락했다. 자녀가 없는 경우 63.2보다 낮은 수치다.

노현곤 KB금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후준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높지만 실제로 노후준비를 실행하는 비율은 낮은 상태"라며 "과도한 자녀 관련 비용이나 부채 상환 부담, 이른 정년퇴직 등이 주요 장애요인으로, 건강이나 심리적 안정 등 비재무적인 준비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재무적인 뒷받침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