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기업인 가석방, 법대로 하면 된다

이두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08 17:40

수정 2015.01.08 17:40

[데스크 칼럼] 기업인 가석방, 법대로 하면 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년 등반길에 "기업인이라고 특혜를 줄 수도 없고, 역차별을 할 수도 없다"고 한 말이 최근 기업인 가석방, 사면 논쟁과 관련해 관심을 끌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일반적인 법원칙을 설명한 데 불과한 발언이 새삼 주목된 것은 기업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 이에 따라 파생된 역차별의 현실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은 일체의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되고 일단 죄를 지으면 일반 범죄자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有錢重罪)는 반기업 정서와 다름 아니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불거진 '땅콩 회항'의 당사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동생의 어이없는 행태,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해서는 증거 인멸도 서슴지 않는 대한항공 일부 임직원의 무조건적인 충성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기업인에 대한 반감을 더 키웠다.

과거 대기업 오너는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나거나 그나마 국민화합, 또는 경제발전 기여 등의 명분을 내세운 대통령 특별사면 등을 통해 건재를 과시하는 시절이 있었다. 이 때문에 '돈=특혜'가 국민들 뇌리에 박혔다.
국민의 59.3%는 반기업 정서가 높고 구체적 원인은 51%가 기업주들의 탈법과 편법이라는 조사 결과(한국경제연구원, 지난해 5월 2000명 대상 기업 및 경제 현안에 대한 국민인식)도 있다.

그러나 기업인에 대한 사법적 특혜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 검찰의 칼날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법원은 강화된 양형기준에 따라 예외 없이 중형을 선고한다. 형집행 정지, 보석 허가 역시 까다롭다. 심지어 가족이 공범일 경우 1명만 구속하는 그동안의 사법적 온정 관례가 최근 기업인 사건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SK그룹은 형제, LIG그룹은 부자, 태광그룹은 모자가 함께 철창행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건을 충족해도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반기업 정서를 의식해 아예 심사명단에도 올리지 않는 법 집행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차별적인 특혜가 아니라 보편적인 법의 잣대를 기업인에게도 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략 연간 6000명이 선고된 형량을 다 채우지 않고 감옥에서 나오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기업인은 제외됐다. 지난해 성탄절에도 614명이 가석방됐으나 주요 기업인은 없었다.

가석방은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고 수형 중인 사람의 행장(行狀)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해 나머지 형벌 집행이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일정한 조건하에 임시로 석방하는 제도다. 성실하게 복역하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수형자가 무기는 20년, 유기는 형기의 3분의 1을 채웠다면 가석방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따져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심사대상에 올리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게 옳다. 그게 법치다.
더구나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 조사 결과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0.3으로 11개월 만에 최저치(전국경제인연합회)이고, 기업인 50%가 올해 성장률을 2%대로 예상(파이낸셜뉴스 및 현대경제연구원 설문 결과)하는 등 경제 여건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 기업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경제에 아무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온당한 징벌인지도 의문이다.
요건을 갖춘 기업인들이 다시 뛸 수 있도록 빠른 시일 내 전향적이고 '법치적인' 조치를 기대한다.

doo@fnnews.com 이두영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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