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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자원배분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22 17:02

수정 2015.01.22 17:02

[여의나루] 자원배분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

'국가의 정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원의 배분'이다. 여기서 '자원'이란 물적, 인적, 재정 자원 등 국가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의미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경제개발이란 다름 아닌 경제분야의 자원배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한 시기는 1960년대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1950년대에도 전후(戰後) 복구를 위한 경제개발을 시도했지만 1961년 경제기획원 발족부터 경제개발 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제기획원은 5·16 후 제일 먼저 만든 정부조직이었다.
휘발유 공급조차 미군에 의존하던 당시에 국내외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고 이를 배분하는 기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경제기획원은 기획국에서 5개년계획을 수립하면 그 계획에 맞춰 외자(外資·차관 등)와 내자(內資·세금 등)를 배분하는 구조였다. 배분방식은 기업의 생산요소인 자본 등을 개별 기업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전체가 아닌 선별적 지원이었다. 소위 '집중과 선택' '불균형 성장론'이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하거나 돈벌이가 잘되는 사업은 누가 할 것인지 사업주체도 결정줬다. 사실상 국가 면허제도였으며 '국가자본주의'였다. 그러므로 중대한 국책사업은 5개년계획이라는 행정적 절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결정됐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화학공업 건설 등이 대표적인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재벌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약 25년에 걸친 선별적 직접지원의 산물이다. 대외 수입규제로 독점이익도 보장해 줬다.

최근 '땅콩사건'을 일으킨 대한항공조차도 국민의 세금으로 직접 지원을 해줬다. 조종사의 해외취업도 금지, 독점고용이 가능케 했다.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경쟁제한은 자본부족에 시달리는 국내기업의 획기적인 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경유착이라는 국내 비판과 불공정 보호무역이라는 국외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과는 통상마찰까지 생겼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자원배분의 전환이 시도됐다. 특정 기업에 대한 직접지원에서 불특정 기업에 대한 기술·인력·에너지 등 간접지원으로 전환됐다. 대표적인 것이 연구개발(R&D) 분야의 국가적 지원이다. 대외개방도 함께 추진돼 경쟁을 유도했다. 이런 전환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 경제의 황금시대와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이런 간접지원도 결국은 대기업 위주로 자원이 흘러들어갔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으나 대표적인 것이 감사시스템의 문제와 이에 따른 관련기관 담당자의 안일함이다. 기술개발 지원도 대기업과 직간접으로 관련돼야 책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퇴직 후 자리 보장도 수월하다.

25년 이상 사용해온 이런 간접지원 방식도 이제 수명을 다했다. 매년 18조원이 넘는 돈을 국가에서 선택한 R&D에 지원할 필요는 없다. 아직도 국가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도 서유럽 국가처럼 무차별적 노동지원으로 자원배분을 대전환해야 할 때다. 기업의 생산요소 중 토지·자본·기술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에 지원을 해야 한다. 노동은 모든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지원 가능하다. 근로자의 주택, 의료, 자녀교육비 등 기본수요는 기업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의 책임을 기업에 떠맡기면 안 된다.

'노동의 유연성'은 고용주의 권한이 아닌 노동자의 권한이 되어야 우리 문제가 해결된다. 근로자가 해고를 걱정하도록 하면 안 된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매달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기업도 정부 지원에 매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복지는 부자들이 가진 것을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부자 세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원배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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