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연말정산이 남긴 상처가 쉽사리 아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직장인은 봉'이란 불만은 더욱 고착화됐고,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금회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전문직과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 대한 반감은 사회통합까지 막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게다가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단행했던 연말정산 제도 변경과 그에 따른 높은 조세저항은 국가의 재정·조세정책 실행 시 큰 도전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복지예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금은 2012년부터 줄곧 예상보다 덜 걷혀 이럴 바에야 국민 합의를 거쳐 '증세'라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증세론이 일각에서 모락모락 제기되고 있다.
■'유리지갑' 불만 커져
올해 연말정산 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직장인이다.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 시 5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평균적 세부담은 줄어들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일자 부양가족공제, 자녀 교육비, 의료비공제 등을 적용받지 못할 경우에 한해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조삼모사' 격인 연말정산을 정부가 '적게 걷고,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선 '많이 걷고, 적게 돌려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제기된 것이다.
직장인들의 이 같은 반감은 상대적으로 세금에서 자유로운(?)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위화감을 증폭시켰다.
25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당시 월급쟁이들이 받는 총 임금과 실제 신고된 근로소득금액은 모두 520조원 안팎으로 큰 차이가 없다. 말 그대로 '유리지갑'인 셈이다.
하지만 의사, 변호사, 음식점 주인 등 전문직·고소득 자영업자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사업·임대소득은 72조573억원으로 국민계정상 개인 영업잉여 114조8465억원의 62.7%에 그쳤다. 37.3%의 소득에 대해선 아예 세금을 내지 않는 셈이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돈 있는 사람에게는 더 걷고, 없는 사람에게는 적게 걷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고소득 자영업자는 세원조차 제대로 포착이 안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법상 사업·임대소득 범위와 국민계정상 영업잉여는 기준이 달라 단순비교는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 4년째 세수결손
예산정책처는 5.6%의 경상성장률(성장률+물가상승률)을 전제로 올해 국세수입이 218조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올해 예산상 국세수입 221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3조원가량 세금이 모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4년째 세수결손이다.
세수결손 규모는 2012년 당시 2조8000억원에서 2013년 8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도 11월까지의 세수진도율은 87.5%로 전년 같은 시점의 89.3%보다 낮게 집계됐다. 기재부는 '1월 재정동향'을 통해 지난해 11조1000억원의 세수결손을 예상했다. 전국 일선 세무관서 신고내역 등을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다.
이런 분위기라면 박근혜정부 집권 5년간 단 한 차례도 균형재정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연말정산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당정이 보완책을 내놓으면서 수천억원가량을 납세자에게 환급해야 하는 상황이 예고돼 세수결손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세무학과 교수는 "연말정산 논란은 특별한 사례가 확대해석되면서 크게 번진 경향이 있다"며 "표를 의식한 정치권과 정부가 여론에 밀려 정책을 철회하면서 세수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손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국민의 세금은 감소할지 몰라도 미래세대는 세금이 늘게 됐다"고 정부의 대처를 비판했다.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말 내놓은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2033년까지는 채무 증가분을 재정수지 흑자나 국채 발행 등을 통해 갚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엔 기존 세입세출구조를 유지한 채 국채 발행을 통해서도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33년께엔 국가가 파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증세논쟁 수면으로 '급부상'
담뱃세에 이어 연말정산까지 불거지면서 '꼼수 증세'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증세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양한 세원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선 주세 인상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번 연말정산 문제로 조세저항이 커지면서 술값에 세금을 더 매기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게 됐다. 담뱃값 인상을 통해 매년 2조8000억원의 세수를 추가 확보했고, 2013년 기준 주세 2조9781억원 중 '서민술'인 소주·맥주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세 인상을 통해 또 다른 역풍을 감수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 등을 중심으로 세율을 올려 중장기적 세입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투자위축, 성장저하 등의 이유를 들어 법인세 등은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현재까지는 같은 논리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증세를 하려면 세율 인상 전 세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비과세.감면, 탈세 등으로 세출 구조조정을 해도 세수결손이 크다면 세율 인상 카드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임금근로자와 같은 성실납세자에게만 부담이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bada@fnnews.com 김승호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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