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전세자금 빌리러 오셨나요? 신용카드 먼저 가입하세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3 17:37

수정 2015.02.03 22:11

전세대출 느니 '꺾기' 기승 고객 '울며 겨자먹기' 사인

은행 전세자금 대출 작년 3조3천억 증가 사회초년생·고령층 대상 꺾기 관행 다시 늘어
“전세자금 빌리러 오셨나요? 신용카드 먼저 가입하세요”

#. 사회초년생인 20대 직장인 김모씨.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남짓한 기간 푼돈까지 아껴가며 1500만원 가까이 모았다. 매달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월세 때문에 올해는 무조건 전셋집으로 이사가는 게 그의 목표였다. 최근엔 그 귀하다는 전셋집도 찾았다. 다행히 전세자금 대출도 가능한 집이었다. 직장 인근에 위치한 A은행을 찾은 그는 창구상담 끝에 전세자금 5000만원가량을 대출받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돌연 직원이 의외의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으려면 월급통장 전용 은행을 변경해야 하는 것과 함께 체크카드 및 신용카드 1장을 각각 추가로 발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지난 몇 달 동안 주말까지 반납하며 찾은 전셋집이라 혹여나 대출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컸다"면서 "더욱이 사회초년생이다보니 이게 꺾기(대출시 금융상품을 강매하는 행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으레 가입해야 승인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고 전했다.

전세자금대출 상품에 대한 은행들의 '꺾기' 관행이 심화되고 있다. 주로 은행 상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60대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이 같은 행태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의원에게 제출한 '은행권 전세자금 대출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세자금 대출 신규 취급액은 14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3000억원 증가했다. 9조원이던 지난 2011년 대비 2012년과 2013년엔 각각 10조2000억원, 11조3000억원으로 집계되는 등 매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1년 기준 7500억원에 불과하던 월평균 신규 대출액도 지난해 11월에는 1조3300억원을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이처럼 전세자금 대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일선 은행 영업점에선 전세대출 승인을 미끼로 고객에게 구속성 예금 등에 가입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다는 일이 늘고 있다. 대부분 영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업계 분위기 때문이다.

실제 주부 이모씨는 시부모가 가입한 B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상품 내역을 보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가적으로 가입한 금융상품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소 (시부모가) 애용하는 지점이라 별다른 의심이 없었고, 오히려 대출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탓에 해당 창구 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면서 "하지만 시부모님이 전세자금대출을 승인받으면서 가입한 각종 금융상품 내역을 보니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에 보험상품까지, 가입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가입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은행 직원은 "이미 다른 은행을 통해 대출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 고객으로, 강요에 의한 상품 가입이 아니었다"면서 "충분한 설명을 통해 고객 본인 스스로 여러 상품에 가입한 경우"라고 못을 박았다. 오는 9월 결혼하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도 제2금융권에서 겪은 씁쓸했던 전세대출 경험담을 털어놨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미 두 곳의 시중은행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던 박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캐피털사 문을 두드리게 됐다.

박씨는 "연소득이 3000만원을 넘지만 프리랜서다보니 제2금융권에서 제시하는 고금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뿐더러, 특히 어려운 전세대출을 승인해 준다는 조건으로 아무리 소액대출이라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신용대출까지 받아야 했던 것은 정말 거절하기 힘들었던 경험"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전세대출에 대한 고객의 수요가 많다보니 일부 지점에서 벌어지는 꺾기 행태인 것 같다"면서 "지점에선 할당된 실적을 맞추기 위해 금융상품들을 곁다리로 묶어 판매하고 있고, 고객은 알면서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업계의 어두운 측면"이라고 말했다.

gms@fnnews.com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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