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차장칼럼] 그래도 해야할 이야기

장용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9 17:46

수정 2015.02.09 17:46

"종교 쪽은 좀…. 왠만하면 하지마."

몇 년 전 기자가 국내 최대 신도수를 자랑한다는 어느 종단의 ○○스님의 비리를 취재하고 있을 때, 10년 넘게 모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던 오랜 친구가 한 충고다.

그는 과거 몇몇 사건을 거론하면서 "너희 회사 앞에서 신도를 끌고 와서 시위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러냐"라고 걱정했다.

그 친구 뿐만이 아니었다. 내후년 쯤이면 검사장에 오를 수도 있는 고참 검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종교는 건드리면 안돼요.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 고참 검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종교단체나 성직자를 상대로 한 수사가 엄청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실토하면서 어색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취재를 하지 말라거나 진실발견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괴롭힘과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심지어 "아무리 설명해도 말이 안통한다"거나 "가족이나 주변사람의 신변에 위협이 생길 수도 있다"면서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종교탄압'이라는 억지를 쓰기도 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들의 우려는 정확했다. 얼마 후 기자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당시 다녔던 회사를 나와야 했고, 가족이 위협을 받는 일도 일어났다. 퇴직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회사 앞에 수백명이 몰려와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처음 생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단체나 성직자의 비리를 고발하면 제 아무리 진실을 보도한다 해도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곤 했다.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주조종실을 점거당한 방송사까지 있었다. 검찰이나 법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종교는 건드리지 마라"는 말이 마치 격언처럼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신흥종교이거나 특정 성직자의 카리스마가 강력한 곳일수록 절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말도 덧붙여진다.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의 잘못을 지적하고 단죄하는데 날카로웠던 언론이 한순간에 무뎌지는 셈이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비판·견제받지 않는 곳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종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펜이 무뎌진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최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전 언론을 상대로 수만여건의 정정 및 반론보도 청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했다. 언론중재위가 생긴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한다.

물론 당시 보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거없는 사생활을 마구잡이식으로 보도한 것이라던지 '밀항설'과 같은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하지만, 정당한 문제제기나 명백한 사실, 정부관계자 등의 발언을 논평없이 보도한 것까지 제소의 대상이 된 것은 유감스럽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로 인해 종교에 대한 언론의 비판기능이 위축되고, 그로 인해 또다른 불행의 씨앗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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