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임종룡 차기 위원장 내정자는 행정고시 동기(24회)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늘 선두그룹에 섰다. 두 사람의 행보는 기획재정부 1차관 이후 갈렸다. 신 위원장은 박근혜정부 출범과 동시에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신 위원장에 앞서 1차관을 지낸 임종룡 내정자는 국무총리실장을 거쳐 2013년 6월부터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고 있다.
금융위원장은 저마다 시대적 사명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위원장들은 한국 금융산업의 판을 새로 짰다. 이때 수많은 금융사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2008년 금융위기 뒤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명박정부의 금융위원장들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박근혜정부 1기의 신제윤 위원장은 금융개혁을 시대적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 육성은 금융개혁의 일환이다.
2기 임종룡 체제 역시 금융개혁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임 내정자는 설 연휴 전 기자들을 만나 "청문회를 거쳐 금융위원장이 된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금융개혁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시시콜콜 간섭하는) 코치가 아니라 심판의 기능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선수(금융사)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율을 부여하되 반칙만 골라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율을 중시하는 임 내정자의 인식에 공감한다. 금융지주 회장으로 있는 동안 임 내정자는 금융감독의 문제점을 절감한 듯하다. 이달 초 금융권 대토론회에서도 임 내정자는 당국의 일관성 없는 규제를 문제 삼았다. 임 내정자는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고질적 관치 버릇에 다시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 늘 경계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2일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위한 무규제 원칙' 보고서에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려면 인터넷 전문은행 분야에 아예 아무런 규제도 적용하지 않는 제로존(zero zone)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산분리 원칙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 예외로 둘 것을 제안했다. 지난 2년간 신제윤 위원장은 잇따라 금융 규제개선책을 내놨지만 관료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임 내정자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금융위원회법에 따르면 금융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위원장 임기제는 소신껏 정책을 펴도록 배려한 장치다. 하지만 역대 위원장들의 실제 임기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좌지우지했다. 이번에도 신 위원장은 2년을 채웠을 뿐이다. 이럴 거면 굳이 법에 위원장 임기를 3년으로 못박을 필요가 있나 싶다. 앞으론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나타나지 않는 한 위원장 임기는 존중하는 게 옳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